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꼭또 Feb 28. 2024

예이츠의 실연 극복 시 읽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 후 거절당하는 경험은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수반합니다. 극단적인 경우 자살하는 경우 혹은 거절한 연인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거나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니 말입니다. 그만큼 연인(연인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노”라는 대답을 듣는 일은 심리적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 결혼 상담 전문가들이나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청혼실패를 극복하는 해법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라. (Look at the relationship objectively). 간단히 말하면 혼자 좋아서 그 난리를 부린 게 아닌가 잘 생각해 보라는 거죠.

2. 반지를 팔아라. (Sell the ring.)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3. 미래의 계획을 세워라. (Make a future plan.) 새로운 사람을 만나란 말이죠.

4. 정신적/도덕적으로 고고하게 행동하라. (Take the high road.) 쉽지는 않겠지만 자 신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자신을 거절한 사람에 대한 예의와 매너를 끝까지 지키란 말입니다.    

5. 너의 감정을 잘 처리해라. (Work through your feelings). 혹은 감정 일기를 쓰 라.  (Journal your feelings)  실패 후 자신에게 일어나는 아픔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에 그 감정의 출구를 찾으란 말입니다. 마음에 쌓인 감정은 대장에 쌓인 변과 똑같아서 나오지 않으면 병이 됩니다.    


   



1890년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발표하고 아일랜드 문단에 떠오르는 샛별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891년 모드 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 후 그는 엄청난 심적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예이츠가 했던 행동을 21세기 전문가들이 권하는 위의 다섯 가지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시인은 불행하게도 모드 곤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정치적 성향과 연극에 대한 열정 등 공통분모도 있었지만 모드 곤은 예이츠를 친구나 정치적 동지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더블린 주재 영국군 장교의 딸인 모드 곤은 군인인 아버지의 성향 탓인지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과격한 혁명주의자였고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예이츠는 유순하고 온화한 성격의 시인이었습니다. 서로가 잘 맞는 성격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아일랜드 정치, 문학, 연극 등의 분야에서 서로 대화가 잘 통하자 착각에 빠진 예이츠는 2 년 간의 만남 끝에 돌진 반지를 들고 한쪽 무릎을 꿇었지만 무안만 당하고 맙니다. 그럼 상기한 두 번째, 세 번째  충고대로 반지를 팔고 미래의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데 그는 반지를 간직했습니다. 다시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맘먹은 거죠. 시인의 머릿속에 모드 곤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계속 돌진하면 언젠가 굳게 닫힌 모드 곤의 맘을 열 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이츠는 자신을 거절한 모드 곤에게 예의와 매너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충고를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언젠가 다시 청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이츠는 곤 양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상기한 다섯 번째 충고의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시인답게 자신의 감정처리는 거의 완벽했습니다. 시인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덕분에 좋은 시를 많이 남겼으니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 셈이며 사랑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배워야 할 자세이기도 합니다.  

  


    1891년 청혼 실패 이후 예이츠의 시는 모드 곤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는 시인의 아픔과 슬픔을 쏟아내는 일종의 감정 출구의 저널이 된 셈입니다. 그가 쓴 많은 사랑 시 중 「물고기」(“The Fish”) 「방황하는 엥거스의 노래」(“The Song of Wandering Angus”)「그는 여인에게 노래를 선사한다」(“He gives his beloved certain rhymes”) 를 읽어봅니다.  먼저 「물고기」입니다. 이 시에서 예이츠의 청혼을 외면한 모드 곤은 예이츠가 다 잡은 줄 생각했다가 놓쳐버린 물고기 같은 존재가 됩니다.

     

     

비록 당신이 달뜨는 밤바다의

출렁거리는 창백한 파도 속에 숨어 있을 지라도

내가 던진 그물로부터 뛰어나온 당신에 대해  

미래의 사람들은 알게 되리라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 먼 기억할 수 없는 과거에

그 작은 은빛 낚시 줄 위로 뛰어올랐는지    

그리고 당신을 매정하고 불친절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당신을 가혹한 말로 비난하리라  

     

Although you hide in the ebb and flow

Of the pale tide when the moon has set,

The people of coming days will know

About the casting out of my net,

And how you have leaped times out of mind

Over the little silver cords,

And think that you were hard and unkind,

And blame you with many bitter words.

     

「방황하는 엥거스의 노래」에서  모드 곤은 다시 한번 시인이 잡았다 놓친 물고기가 됩니다.  아일랜드 전설 속 사랑과 젊음의 신인 엥거스는 어느 날 머리에 “정열의 불”이 붙자 개암나무 숲으로 갑니다. 그는 개암나무 가지를 꺾어 낚싯대를 만들고 딸기 한 알을 꿰어 시냇가로 가서 은빛 송어를 잡습니다. 엥거스가 불을 지피러 간 사이 송어는



      머리에 사과 꽃을 꽂은

희미하게  빛나는 처녀가 되어

내 이름을 부르며 달아나더니

이내 찬란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네


텅 빈 땅과 언덕을 방황하느라

나 이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지만

처녀가 간 곳 기필코 찾아내어

입 맞추고 손 잡으리...   


It had become a glimmering girl

With apple blossom in her hair

Who called me by my name and ran

And faded through the brightening air.


Though I am old with wandering

Through hollow lands and hilly lands,

I will find out where she has gone,

And kiss her lips and take her hands;



사라진 처녀를 찾아 방황하는 앵거스는 모드 곤을 놓친 후 정신적 충격을 받은 시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모드 곤은 시인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첫사랑의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진주 빛 투명한 손을 들어

당신의 긴 머리칼을 묶어 올리고 한숨만 쉬면 된다.

그러면 모든 남자들의 심장은 불타오르고 뛰게 될 것이니

어둑어둑한 모래 위의 떨어진 촛불 같은 거품  

그리고 이슬 떨어지는 하늘을 오르는 별들은

오직 당신의 걸어가는 발을 비추기 위해 존재하니 (「그는 여인에게 노래를 선사한다」)    

     

You need but lift a pearl-pale hand,

And bind up your long hair and sigh;

And all men's hearts must burn and beat;

And candle-like foam on the dim sand,

And stars climbing the dew-dropping sky,

Live but to light your passing feet.

     


시인에게 모드 곤은 참기름 묻은 손으로 잡아야 하는 물고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곤 양(Miss Gonne)이 몸만 함께 있을 뿐 정신적으로는 이미 멀리 가버린 여자(Miss Gone)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시인 본인의 감정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상대방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은 탓입니다. 사랑은 혼자 아닌 둘이 하는 게임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생에 마이너스가 나면 (플러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일 뿐 결코 최종적인 마이너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이츠는 실연으로 고뇌하고 한탄했지만 그 아픔 때문에 좋은 시를 많이 썼으며 결국 1923년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예이츠의 사랑과 큐피드의 황금화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