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kg를 감량한 탄수화물 중독자의 유지어트 이야기
거대한 변화는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남기는 법이다. 큰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바다처럼 몸에도 여러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다이어트의 반짝이는 빛 아래 가려진 그림자는 대체로 조명받지 못한다. 사실 외면당하는 쪽에 가깝다. 당연한 일이다. 이 모든 고생이 끝나면 그저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다이어트에 끝은 없으며 살을 뺀 당신의 몸은 기대보다 못나게 허물어진다고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싶다. 대학 입시 이야기와 좀 비슷하다. 대학만 들어가면 살도 빠지고 예뻐지고 애인도 생긴다던 선생님들이 생각 난다. 다이어트 하면 무조건 건강해지고 예뻐지고 어쩌고 저쩌고... ... 개인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내 브런치에는 무조건 솔직하기로 결심했으므로 어디서 보기 힘든 다이어트에 대한 이런저런 구질구질함을 가급적 솔직하게 적고자 한다.
살을 뺀다는 말을 단순히 멋진 몸매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탓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내 몸 역시 생명체이자 매우 유기적이다. 블록 놀이마냥 체중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스르륵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느 특정 부분의 살만 뺄 수 없듯 지방만 쏙쏙 골라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살과 함께 함께 상실되는 근력과 에너지, 영양소, 과도한 지방마저도 내 몸을 지탱하던 구성원이다. 그러므로 다이어트 기간중의 고통은 일단 제쳐두고, 내 몸은 자꾸만 뚱뚱함을 유지하고자 무진장 애쓴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름대로 건강한 다이어트를 진행했는데도 말이다.
'다이어트 = 완벽하게 건강한 행위' 라는 굳건한 믿음은 다소 위험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다이어트가 건강에 당연히 이득이 되는건 맞다. 혈압이나 혈당, 각종 성인병과 합병증을 생각하면 백번천번 권장되는 행위다. 하지만 다이어트 중 나타나는 신체적 건강 이상 증상을 지나치게 무시해서도 안된다.
다이어트를 하며 나타나는 건강 이상 중 가장 흔한건 역시 두드러기와 알러지다. 나는 30kg를 넘게 뺀 직후 면역력이 약해져 조금만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건강이 많이 회복된 지금도 술을 마시면 근질근질할때가 있다. 탈모나 현기증은 다이어터들에기 너무 흔한 증상인데다, 피부가 뒤집어지거나 여드름이 올라온다는 후기도 읽었다. 평소보다 많이 움직이면서 영양소 공급이 줄어들다보니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정도와 기간은 다이어트 강도에 따라 다르다.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탈모다. 나는 이전 브런치에서도 탈모의 공포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가뜩이나 얇고 빈약했던 머리숱이 그야말로 한줌이 되는 경험을 하고나자 이제는 매일같이 꼬박꼬박 두유에 서리태 가루를 타서 마신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새카매졌다. 이것도 효과라면 효과일까?
나처럼 많은 체중을 뺀 사람들에게 한둘쯤 있는 흔적이 있다. 바로 튼살이다. 튼살은 보통 임산부들에게나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튼살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20KG 정도 뺐을때 배에 흰 선 같은게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제로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니 그저 미관상의 문제다. 하지만 역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크림을 사다 발라보았지만 썩 효과는 없어서 냅뒀다.
검색해보니 살이 많이 빠진 부위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거나 튼살이 생기는 일은 꽤 자주 일어나는 듯 했다. 게다가 성장이 끝난 성인 다이어트일수록 튼살이 넓은 부위에 발생한다고 한다. 튼살로 인한 스트레스 경험도 수두룩 했다. 나만 겪는 특수한 일이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생기는 현상인거다.
하지만 다이어트 시작 전 아무도 내게 튼살이나 두드러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라고 조언한 사람 중 누구도 탈모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다이어트로 건강을 해치는 여성들이 많은 요즘에는 반드시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위험성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이어트 중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조언을 듣는 것과 무조건 살을 빼면 예뻐지니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라는 식의 나몰라라 조언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뜩이나 힘든 다이어트 시작 전부터 초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이어트도 크게 보면 건강 관리에 속한다. 내 몸 건강하자고 하는 일이니 기왕이면 보다 안전한 방식을 따르며 피할 수 있는 요소는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쨌든 살을 뺀다는 일 자체가 최고의 건강이니까.
뚱뚱했던 시절에 늘 하던 망상이 있다.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모두 벗고 거울 앞에 서면 뱃살을 붙잡고 슥슥 잘라내는 상상을 했다. 허벅지를 반으로 줄어든다면... 같은 꽤 끔찍한(?) 생각도 자주 했다. 이렇게 과학이 발전했건만 왜 살을 쉽게 빼는 방법은 없는지 과학자 분들께서는 뭘 하고 계신지 세상의 부조리함에 문과다운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통해 절반 넘게 줄어든 배를 가진 지금, 내 배에는 흰 튼살이 식물 줄기처럼 작게 남았다. 샤워 전 튼살을 가끔 매만져본다. 적어도 허황된 상상 속의 다이어트 방법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온건한 몸을 만들었다. 튼살이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다. 조금 오돌도돌하고 하얀 선들이야말로 내 다이어트의 증거물이자 훈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