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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Oct 18. 2021

유지어트는 쉬울 줄 알았는데: 바디프로필은 누구를 위해

36kg를 감량한 탄수화물 중독자의 유지어트 이야기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이실직고 하자면 요즈음 글이 좀 뜸해졌다. 사실 출퇴근 시간에 영어 점수를 위한 인강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브런치에 글을 쓰곤 했는데 인강을 듣자니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가끔은 브런치 쓰는게 좀 지겹기도 했는데 막상 이른 아침부터 인강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글을 쓰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어찌 이리도 간사한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나중에 이걸로 브런치 글을 써볼까 하는 글감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으니 나름대로 견딜만 하다.  


바야흐로 지금은 셀프 브랜딩의 시대다. 내가 이력서에 갱신할 영어 점수 한 줄을 위해 아등바등 인강을 보는 것도 브랜딩이겠지만 사실 이건 1차원적인 접근이다. 누구누구의 딸, 00고 00대 졸업, (주) 00 재직중, 자격증 같은 프로필로는 개개인의 매력과 장단점을 절대 드러 낼 수 없다. SNS를 이용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센스를 전시하는 일은 이제 너무 흔하다. 방송인들의 '부캐'도 익숙한 콘텐츠가 되었다. 인생은 한번뿐이고 나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아주 많다. 당장 내가 글을 쓰는 플랫폼인 브런치조차 회사원과 작가를 병행하는 재능 넘치는 분들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바디 프로필, 일명 '바프'의 유행 역시 셀프 브랜딩과 자아실현으로 귀결된다. 바디 프로필은 내 몸의 증명 사진이다.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고 멋진 몸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멋지고 붉디 붉은 아드레날린이 넘쳐 흐른다. 나 역시 다이어트 짐에 다녔을 때, 입구에 빼곡히 찍힌 비포 앤 애프터 사진들과 바디 프로필 사진을 우러러 보던 시절이 있었다. 다이어트조차 벅찬데 살을 깎고 근육을 만드는 지난한 과정들이 두려웠다. 사진 옆에 붙어있는 -20kg가 무슨 로또 당첨금처럼 현실감이 없는 숫자처럼 느껴졌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많은 숫자를 감량했지만 여전히 멋진 근육을 만들어 프로필 사진을 찍을 자신은 없다. 근육과 코어는 다이어트 만큼이나 엄청난 운동과 노력, 식단 조절이 필요한 영역이다. 게다가 나는 설렁설렁 다이어트의 대표주자이자 정상 체중의 아슬아슬한 영역에서 호된 다이어트를 멈췄으니 바프를 찍는 분들에게 감히 댈 것도 아니다.


바프를 찍기 위해 천천히 몸을 만들고 장기간에 걸친 운동과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이라면 걱정은 커녕 이 시대의 진정한 도인이라고 칭할 만 하다. 먹을 것도, 재미난 것도 넘쳐나는 세상에서 자의로 모든 음식과 즐거움을 뒤로하고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는건 절대 쉽지 않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문제는 바프를 위한 준비 기간이다. 초단기 다이어트와 식사 제한을 통해 바짝 만들어내는 바프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TV의 연예인들은 바프를 찍기 위해 보기만 해도 허기가 몰려오는 식사를 마치고 트레이너와 함께 고강도의 운동을 몇 시간이고 진행한다. 쏙 들어간 허리와 선명한 복근은 과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꾸안꾸' 스러운 근육을 선망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뭘 입어도 폼이 난다고나 할까, 패션의 완성은 결국 몸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멋지다. 나도 저런 몸이 되어 바프를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바프를 찍기 위한 모든 과정은 100% 나의 의지로만 이루어진 의견인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나는 갑자기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왜냐하면 나의 다이어트 시작은 순수한 자의가 아닌 우울감과 사회의 비만인 혐오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건강은 애초에 내 목적이 아니었고, 당연히 몸이 삐그덕대는 신호를 무시했다. 이건 무절제한 비만인의 삶을 즐겼던 내게 내려진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극심한 탈모와 함께 수 많은 건강 이상을 인지하고 나서야 나는 내 몸의 실체를 깨달았다. 너무 오래 붙어있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던 내 몸은 분명히 내 정신을 담고 나와 함께 살아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건전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의 무게를 느꼈다. 동시에 사회적 시선이나 몸매를 위한 다이어트의 위험성은 타이타닉을 박살낸 거대한 빙산처럼 가려져 있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그래도 한때 마름어트가 유행했던 시절보다는 바프가 훨씬 건강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물론 직업 모델처럼 깡마른 몸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근육과 탄탄한 몸을 강조하는 바프가 좀 더 건강한 과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마르기 위해 최소한의 영양제로만 버티며 절식하는 것과 선명한 근육을 위해 물조차 먹지 않는 모습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사진 속의 인위적인 건강함을 찍기 위해 진짜 건강을 해치는 건 정말이지 무모한 일이다. 내 경험을 살짝 보태자면, 한 번 고장난 소화기관은 절대 쉽게 건강해지지 않는다. 다이어트 탈모의 공포를 느껴본 나로서는 극단적인 절식 이후 (다이어트성 탈모는 바로 나타나는게 아니라 다이어트 2~3개월 이후 찾아온다.) 터무니 없이 부족한 바프 식단을 보다보면 과연 이분들이 다가올 몸의 이상 증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실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몇몇 업체에서 바프를 홍보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 같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몇달, 혹은 몇주간의 고생은 바프라는 빛나는 결과물로 남을거라고 설득한다. 그 설득 과정에 다이어트나 운동의 부작용이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신체적 고통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무리한 다이어트 과정에 몸에 대한 배려는 없으며 살은 바프라는 업적을 위해 반드시 빠져야 하는 사악한 존재처럼 다룬다. 사실 '살을 뺀다'는 것은 건강한 몸과 늘 동일하지 않다. 어떤 몸에서 얼마나, 어떻게 빼냐에 따라서 살이 빠지는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결과따윈 어찌되도 좋으니 최대한 빠르게, 많이 빼는걸 목적으로 하는 다이어트는 너무나 위험하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바프를 찍은 연예인이나 sns에 공개한 분들의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오일을 발라 반짝거리는 몸과 잘 다듬어진 근육, 활짝 웃는 표정은 아주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바프를 찍는 순간을 위해 극기에 가까운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만들어진 건강은 마치 허상처럼 보인다. 무엇을 희생하고 얻는 사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세상의 어두운 면만 보면서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문제점을 짚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언제나 삐딱선을 타던 사람이다. 나는 지난 30년 가까이 고도비만으로 살아왔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비만일때 겪을 수 있는 온갖 짜증과 불쾌한 문제를 아주 긴 시간동안 내 삶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내가 살아가면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과업이자 벌, 수모처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비만이기 때문에.


과거 비만인 시절부터 나는 아주 밝고 잘 떠드는 사람이었다. 낯을 극도로 가리는 사람은 불편한 기류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던져 분위기를 띄우곤 하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심심찮게 나 자신을 비하하는 농담도 잘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아주 외향적인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몹시 우울하고 말수가 적은 내가 있었다. 히스테릭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주일은 거뜬히 보내는 소심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은밀히 날씬하고 멋진 몸매의 사람들을 질투했다. 그걸 드러내는건 엄청난 수치이자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라서 뚱뚱한 지금도 멋지고 행복하다고 애써 의연한 척 했다. 동시에 나는 절대 저렇게 될 수 없다는 절망감과 패배감에 젖어 살았다.


왜 그런 마음들을 숨겼냐고 묻는다면, 그건 내 약점이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질책 할 수 있는 먹잇감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그럼 살 빼면 되잖아, 다이어트 하면 되는걸 왜 안하냐는 가벼운 꾸중과 농담들을 넘기기엔 내 정신은 너무 사악하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애써 괜찮은 척 했다. 내 다이어트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그만 계기에서 시작되었다. 건강이나 내 몸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나는 그걸 아주 많이 후회한다. 앞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하실 분들은 부디 나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으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한다. 바프를 염려하는 시선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바디 프로필이라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 여러 부작용과 주의 사항을 분명히 인지하시고 시작하시는 건지 말이다. 오지랖이라 해도 좋다. 여성의 몸은 늘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위해 가꿔져 왔던 오랜 역사가 존재한다. 그 무엇보다 당신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늘어나야만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런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사회적 시선과 나 자신의 비만 혐오에 지쳐 다이어트라는 길을 선택했다. 여성의 주체적 선택과 권리를 존중하는 시대라지만 내 몸은 정말 내 것이 맞긴 한걸까? 다이어트를 넘어서서 출생률 저하, 낙태, 생명권과 관련된 문제들마저도 여성의 의견이 배제되거나 혹은 어떤 집단의 의견이 더욱 부각되기도 한다. 이 모든 고민들은 결국 몸으로부터 비롯된다.


때때로 내가 확신했던 생각의 경계가 흐려지고 흔한 다이어트 예찬론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져서 브런치에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다. 정작 나 자신은 30KG를 넘게 감량한 다이어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당신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말은 기만처럼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비만인이던 시절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내 몸때문에 소극적으로 굴거나 행동할 때마다 정말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환멸도 있었다. 나조차도 벗어나지 못한 굴레를 다른 분들께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기도 했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앞으로 차츰 여러가지 말과 의견을 솔직하게 적어볼까 한다.


세상에 자기 자신을 나쁘게 봐줬으면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아무리 글을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해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논란이 거센 주제에 대해 슬쩍 넘기거나 언급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왜냐하면 미움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낯선 누군가와 인터넷 상에서 거창한 논쟁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과 눈치는 오랫동안 직접 겪어온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제다. 이 막중한 이야기를 과연 내가 다룰 수 있을까? 사실 나의 의견을 내는 것, 나아가 내 몸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 지리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로 결심한 이유는 딱 하나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늘 부정적이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바디 프로필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건강한 몸을 사진으로 남겨놓는다는 일의 적극적인 마인드와 그 의지는 눈이 부실 정도다. 나는 감히 상상조차 안 해본 행동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은 아닐까 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듯 바디 프로필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다이어트나 바디프로필 같은 자신의 몸을 바꾸는 모든 행동에서 스스로의 의지와 긴 시간을 들일 각오가 앞서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강권이나 사회적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순간의 사진을 위해 소중한 몸과 마음을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디 프로필에 담기는 것은 멋진 근육과 날씬한 몸매뿐만이 아니라 몸의 주인인 당신도 함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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