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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Jun 14. 2023

여름 소낙비

#여름 소낙비의 추억 #소낙비 샤워 #찐 여름


쏟아붓듯이 내리는 소낙비의 시원함을 느낀 지 정말 오랜만이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더운지, 추운지 느끼기 어려운 도시인의 삶.

모처럼 푸르른 나무들과 보도블록에 쏟아지며 튀어 오르는 빗방울의 조각들을 피부에 느끼며 앉아 있으니

마음속 마른땅에도 촉촉이 빗물이 스며들며 생기가 돈다.

매일 되풀이되는 똑같은 일상의 통속에 갇힌 삶, 마른 농작물 같은 삶이었나 보다.

그저 입과 코를 크게 벌리고 흠뻑 들이마시게 되는 축축한 비 내음, 

모처럼 비멍(?)을 때린다.


오래전, 어린 시절에는 

마루 끝에 앉아 쏴하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시원함과 후련함을 만끽했었다.

비뿌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까만 점처럼 빗방울들이 줄줄이 쏟아져 내려온다.

지면으로 가까워지면서 까만 점들은 큰 물방울들이 되어 땅에 부딪히고 

부딪히며 조각조각 부서져 다시 튀어 오르며 포말을 흩뿌린다.

축축한 습기가 온몸에 부딪혀 세포를 적시며 파고들면 

어린 나는 그냥 있지 못해 빗줄기 가득 쏟아지는 마당으로 뛰어나간다.

더위에 힘들어하던 온몸 구석구석의 감각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양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면서 나는 신바람 난 강아지처럼 맴돌기를 한다.

비는 머리를 적시고 이내 온몸을 적시며 날리는 머리카락 끝에서 뚝뚝 떨어진다. 

고개를 하늘로 향하면 조금은 아플 만큼 얼굴을 두드리는 빗줄기.

세게 부딪히는 빗줄기는 피부 통각을 가볍게 자극하며 마사지를 해준다.

입을 크게 벌려 목구멍 깊숙이까지 빗줄기를 마시고 

온몸으로 한 그루 작은 나무처럼, 풀처럼 대지를 디디고 서서 비에 흠뻑 젖던 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그 환희와 해방의 느낌, 

그 순간 자연과 나는 하나가 되어 교감한다.

아직도 온몸의 세포에 기억되어 있는 시원하고 짜릿한 놀이의 순간이었다.


한바탕 소낙비가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뜨거운 습기가 올라온다.  

후끈 달아오르는 맨 흙땅에서는 습기와 함께 진한 흙냄새가 올라와 코로 스며든다. 

뜨끈하고 눅눅하며 진한 흙냄새.  

한여름의 강한 햇볕은 빗물 머금은 땅을 금세 말려버리고 

다시금 절절 끓는 열기를 뿜어내게 만든다.

쏟아지는 대굵은 소낙비 그리고 비그친 후 대지가 뿜어내던 습습하고 눅눅한 열기,

그 열기에 젖은 몸을 말리며 노곤한 눈으로 하얗게 빛나던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

그것이 찐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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