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팬하우어 Oct 01. 2023

#08. 일과 thㅏ랑, thㅏ랑과 일

  저는 2021년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20대 내내 바라오던 꿈을 드디어 이룬 것이죠. 이제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갈 줄 알았습니다. 비록 섬 지역에서 8년 동안 근무해야 하는 조건 속에 놓여 있었지만, 이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기대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심지어 첫 직장인 지금의 학교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아내를 만났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생이 너무 순조롭게 잘 풀려간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순탄하지 않더군요. 연애를 할 때부터 불거진 문제였지만, 지금의 아내가 섬을 떠나면 장거리 연애가 될 것이고, 이후에 결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몇 년동안은 주말부부를 면치 못할 것인데, 감당할 수 있겠냐의 문제였습니다. 모든 난관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난관 때문에 저는 지금 사랑하는 아내를 잃을 위기에, 또 제 스스로를 잃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힘겹게 취업의 문턱을 넘은 저에게 또 다시 취업의 문이 열려버린 것입니다. 지금의 아내와 주말부부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자 다시 임용 공부에 발을 들이고 말았거든요. 물론 현역 때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수업도 해야 하고, 각종 행정 업무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집에 와서는 평일에 함께 보내지 못한 아내와의 달콤한 시간도 가져야 하니까요. 그래도 짬을 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는 점점 제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지금 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외부 환경에 의해 내가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저는 제 의지에 의해 섬마을 선생님 전형을 선택했고,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이 전형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죠. 즉, 자기부정을 매일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네가 선택한 것 아니냐고 하시겠죠. 맞습니다. 지금 아내와 결혼한 것도, 이럴 각오를 한 것도, 임용 시험을 다시 봐서 나와보겠다고 공부를 선택한 것도 저 자신입니다. 하지만 버겁기는 합니다. 일도 저에게 있어서는 소중하고, 아내와의 가정 생활도 소중한데 이것을 병행하기에는 심적으로 너무 힘이 드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제가 섬 밖으로 나와서 아내와 매일 함께 하길 바라는 아내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 제가 바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점점 저라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은 왜 그런걸까요? 지금은 학교 일을 하면 공부 생각이 나고, 공부를 하고 있으면 학교 일 생각이 나고,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그런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에만 집중한다 하더라도 성취하기 어려운 것들인데, 이것을 병행하기에 아직 저는 나약한가봅니다.


  아예 일을 그만 두고 다시 임용 공부를 해볼까 했지만, 그것도 경제적 사정 때문에 여의치가  않더라구요. 일을 그만 두고 임용 공부에 올인한다고 하더라도 좁아빠진 임용 문턱을 다시 넘을 수 있을지가 가장 최대의 문제이니까요. 결국 그만두고 다시 합격하지 못하면....어휴 상상하기도 싫네요. 

  세상 살이 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취업하고 결혼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산들을 넘으니 또 다른 거대한 산이 제 앞에 떡하니 놓여 있다니... 저는 과연 이 산도 잘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07. 동거와 결혼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