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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팬하우어 Oct 04. 2023

#11.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시계추 사이

#쇼펜하우어

  어제 독서와 관련된 글을 쓰고 나서, 한참 동안 밀리의 서재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살펴보았습니다. 인생이 기구하다는 생각 때문에 갈등 요소가 많이 있는 소설은 제외하였고, 무엇인가 새로운 배움을 얻고 싶어서 제가 공부해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분야의 서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쇼펜하우어와 관련된 철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과 윤리와 같은 과목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시피 하여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도 있겠거니와, 지금 고달픈 내 인생에 무엇인가 새로운 지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이 책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라고 흔히 불리우는데, 쇼펜하우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니컬한 시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제 마음에 와서 박힌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말은 "인생은 고통과 권태의 시계추 사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은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만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 고통이 해소가 되면 다른 고통이 찾아오기 전까지 권태에 젖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행복이란 고통이 최대한 덜어진 삶이라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삶은 지금 고통과 권태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요? 결혼을 하기 위해 지금의 아내에게 끝없이 구애했던 그 순간은 고통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결혼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같이 극복해나가자고 설득하는 그 순간순간은 고통스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헤어질 뻔한 순간도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요. 결혼을 하고 한 달 정도는 고통이 최대한 덜어진 상태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기 병가로 학교도 나가지 않았고(본의 아니게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신혼 생활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내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아내의 태도가 조금씩 차가워지기 시작한 순간 저의 시계추는 고통 쪽으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라 살얼음판을 밟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내가 또 상냥하게 대해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고통이 조금 덜어진 행복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들이 지속되다보니 제 삶의 시계추가 고통에서 권태로 기울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아내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아내의 냉담한 반응이 보였을 때는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의 반복이 일어나니, 저도 사람이라 그런지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이란 원래 이혼과 결혼 유지의 사이 어디쯤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것인가와 같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삶이 권태로워지기 시작했어요. 어찌 보면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에 겨운 소리이겠지만요...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다보니, 인간은 참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질적인 면에서도 물론 그렇지만, 감정면에서도 말이에요. (제 상황에 입각해서 보면)이혼이라는 현상은 사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이잖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닥쳤다고 해서 저는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을 받았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을까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었습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고 나니,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구나, 내가 참 이기적인 생각을 했었구나라는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생, 더 콕 집어서 저의 상황에 대입하자면 이 이혼과 결혼의 유지라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쇼펜하우어의 개념을 빌리자면 우주의 의지 중의 일부이자, 먼지만큼 작은 일 중의 하나니까요.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염인주의자로 비판을 받는 면이 있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저는 쇼펜하우어의 이런 시니컬한 삶의 시각이 참 마음에 듭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쇼펜하우어의 글에 묻혀서 살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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