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생님의 섬생활 고투기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학창 시절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단순히 제 학창 시절만 떠올려 보아도, 언뜻 30~40명 정도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들도 얼추 비슷하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혹여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교사가 있으시다면, 선생님들께서 수업하시는 교실에도 웬만하면 적어도 20명 정도의 학생들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한 학급에 1~4명의 학생들이 한 학급을 이루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엄청 인원이 적죠? 이렇게 해서 올망졸망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총 7명입니다. 네, 정확히 제가 근무하는 중학교의 전교생이 1~3학년 통틀어서 7명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나 싶으시죠? 저도 처음에 뜨악했답니다.)
1학년 2명, 2학년 1명, 3학년 4명. 저희 학교 구성원들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우리 학교의 최고 과밀(?)학급인 3학년 담임이자, 1~3학년의 국어 수업을 맡고 있는 국어 교사입니다. 전교생이 7명이라 수업이 편할 것 같으시다구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일주일에 수업을 하는 시수도 육지에 계신 선생님들보다 평균 8시간 정도 적었거든요. 하지만 역시 인생은 생각처럼 풀려가지 않더군요! (조금 이해가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 이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보통 육지 학교에서 한 선생님께서 1주일에 20시간을 수업을 하신다면 1~4차시의 수업, 즉 4개의 수업을 만들어 5반 정도 들어가서 수업을 하셔서 20시간 수업을 하십니다. 즉 일주일에 4개의 수업을 구상하면 5번 반복하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기술적 측면이나 내용은 보충해가면서 조금 더 발전된 수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하지만 저는 수업 시간은 일주일에 12시간인 반면에, 12개의 수업이 모두 새로운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3개 학년의 수업을 모두 만들어야 하는 고충도 함께 안은 채요.. 즉 일주일에 한 학년의 수업을 4개씩, 총 3개 학년의 수업을 매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수업은 거의 일회용품에 가깝습니다. 다른 반에서 수업을 좀 더 개선할 수 없는 여지가 없습니다. 그 시간에 딱 한 번 쓰고 폐기처분 되는 수업입니다. 뭔가 오류를 깨닫고 발전시키려면 다음 학년도의 해당 수업에서야 보완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사로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 것이 저의 요즘 딜레마입니다.
그리고 흔히 하시는 오해들 중 또 한가지는, 학교가 작고 학생이 적으니 행정 업무도 적겠다고 생각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전혀 아닙니다. 모든 학교의 행정 업무는 100(임의로 가정했습니다.)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육지의 학교는 60~80명의 선생님들이 이 100이라는 행정 업무의 양을 분배해서 가져갑니다. 하지만 저처럼 도서/벽지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이 100이라는 행정 업무를 겨우 15~20명의 선생님이 분담하게 됩니다. 즉 육지에 계신 선생님들보다 행정 업무 강도가 2~3배는 강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교재연구, 수업 준비를 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판에 박힌 수업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저 자신도 너무 안일해지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고, 양질의 수업을 제공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할 따름입니다. (여기에서 교육부/기재부에 대한 불만을 잠깐 언급하자면, 정부 부처는 철저하게 숫자의 논리에 따라 학생수, 학급수에 따라 학급/학생 수가 줄면 가차없이 교사의 T.O.를 줄여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네, 맞습니다. 그 빈 자리의 행정 업무의 양은 남은 선생님들이 더 분담하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 시간을 빼앗기는 선생님들은 수업 준비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그럼 결국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저는 교육에 있어서는 이런 숫자의 논리에서부터 하루 빨리 정부 부처들이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슈가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공론화된다면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 좀 더 개선되지 않을까요? 저희 교사들이 백날 외쳐봐야 들어주지도 않습니다...안타깝게도....)
여기까지는 저의 불만(?)이 섞인 고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학교에 근무하다보니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학생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때로는 이 점이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사실 이곳 교사-학생의 관계는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친척 또는 가족에 가까운 관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들도 선생님의 웬만한 사정은 다 알고, 저희 역시도 학생들의 사정을 웬만큼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저도 이곳에서 1년 반 정도 지내다보니 학생들하고 눈만 마주쳐도, 잠깐 말만 섞어도 이 친구가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 다음 행동은 어떤 행동을 할 지 예측이 가더라구요. 그리고 속 깊은 이야기도 가끔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곳에서의 학교는 단순히 교육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육의 연장선상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이 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떄가 있습니다. 섬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십수년 간을 지내면서 해 보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무엇이든 지레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 이 섬과 학교를 떠나 더 큰 사회에서 생활할 아이들이 걱정됩니다. 하지만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살아 온 이 아이들은 다른 육지에서 살아 온 아이들보다 장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즘만큼 개성이 강한 MZ세대들에게 있어서 아무나 해보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들이 아이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2학기에는 이 아이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을 고민해보면서 실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 앞으로 몇 년을 더 근무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그날까지 7명의 소중한 새싹들이 모두 자신만의 꽃을 피워낼 수 있게 교사로서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