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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팬하우어 Aug 11. 2022

#04. 내향적이라도 교사 할 수 있습니다!

섬생님의 섬생활 고투기

  선생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수업하는 모습, 교사 개개인의 교육관에 따라 학생들을 카리스마 있게 지도하는 모습. 이런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제 학창시절 선생님의 모습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저도 그런 선생님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심한 교사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지금 학생들 앞에 서 있게 되었을까요?


  저는 타고나길 내향적인 성격으로 태어났습니다. 학창시절에도 앞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친구들 사이에 묻혀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길 바랐고 선생님들 눈에 최대한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딱 한 번 부반장 역할을 맡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요, 아마 이 시기가 저로서는 가장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학창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부반장이 무슨 특별히 할 일이 있었겠냐마는 그래도 부반장이라는 그 타이틀 자체가 저에게는 부담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의 이목을 집중받게 되니까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반장, 부반장 어머니들이 꼭 학교에 간식 같은 먹을 거리를 돌리기도 하고, 학급 환경 미화를 위해 화분을 들여 놓기도 하고, 생일이 되면 생일파티도 꼭 집으로 불러서 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도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냥 조용히 가족들이랑 보내거나 친한 친구 몇 명과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나름 고등학교도 3년 기숙사 생활을 해서 사회화가 어느 정도 되었을 줄 알았는데,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 잘 하는 친구들 앞에서 괜히 주눅이 들어서 앞에 나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당시 선생님들은 지금 저라는 사람을 기억을 못하시지 않을까요?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크게 주목받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임용고시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 정도로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기억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렇게 평생을(지금까지도) 내향적인 성격으로 살면서, 누군가의 눈에 띄려 하거나 특별히 사교적인 관계를 맺고 살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정말 마음에 맞는 친구 몇 명, 존경할 만한 어른 몇 분과만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야만 하는 교사라는 업을 선택해 2년 반 정도의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남의 눈에 띄기 싫어하던 내향적인 아이가 남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교사를 직업으로 삼다니..... 저도 가끔은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교사를 꿈꾸어 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교사라는 직업에 끌리기는 했지만, 제 성향 상 남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 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마음 한 켠에 고이 묻어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어릴 때의 꿈은 그냥 행정적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행정직 공무원들도 다양한 민원인을 만나야 하지만, 누구나 그 정도의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해야 밥벌이를 하니까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영향으로 (당시 초임교사셨는데 아주 열정적인 분이었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저 편 구석에서 끌고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모든 교사가 외향적일 필요는 없다, 네가 내향적이라면 생각이 깊다는 이야기이고, 그런 점이 분명히 학생들의 정서적인 측면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깊으니 더 좋은 수업을 연구할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을테니, 성향 때문에 교사를 포기하지 말아라."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렵긴 했지만 도전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제 수능 성적에 맞는 사범대학에 진학을 했죠.


  하지만 역시 사람의 타고난 성향은 엄청난 힘을 가졌더군요. 아직도 학부 시절에 했던 처음 수업실연 강의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왜냐고요? 수업에서 사용할 내용 및 대사를 연극 대본 외우듯이 달달 외우고 연극 톤을 사용해가며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면서 했었거든요. 더 가관인 것은 청심환까지 복용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때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를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그냥 자퇴를 하고 공무원 시험에 올인을 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배워온 것들과 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청심환을 몇 병을 먹더라도 끝까지 도전하자는 마음을 먹고 계속 부딪혀나갔습니다. 물론 죽을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나름의 그 긴장감을 즐기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1차 시험을 통과하고 2차 수업실연과 면접 시험만을 앞두고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내향성은 이 때 또 저에게 시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에 수업실연과 면접을 다른 학우들과 함께 조를 이루어 스터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정말 다들 말을 얼마나 잘하고 자연스러운지, 또 주눅이 들어버리더라구요. '저런 사람들을 제치고 내가 과연 이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정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수천 번은 곱씹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2차 시험을 열흘 정도 앞두고, 저의 스터디를 도와주신 조교님께 찾아가 "더는 못하겠다. 붙을 자신이 없다. 포기하겠다." 선언을 했습니다. 제 성향을 잘 알고, 제 가능성을 믿어주신 조교님은 온갖 위로와 설득을 통해 결국 저를 시험장에 보내시고 말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교님... 조교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아직도 독서실에서 수험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시험은 2일 간 진행되었습니다. 첫날에는 수업실연을, 2일차에는 면접을 보았습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 지,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두 번 다 수험번호 1번을 뽑았습니다. 시험 전전날 처방받았던 효과가 좋다던 인데놀을 복용했음에도 약기운이 돌기도 전에 시험이 끝나버렸으니까요. 여차저차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저는 간신히 시험에 최종 합격하여 교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단에 서서 수업을 할 때는 사실 정말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감 있게, 카리스마 있게 아이들 앞에 서서 수업을 하고 싶기도 했고,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도 당당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 앞에서 성향이 어떻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생활은 정말 적자생존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크게 제 내향성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님께 할 말이 있으면 당당히 하게 되었고, 아이들 앞에서도 제가 준비해 온 수업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해주신 말처럼 오히려 저의 내향성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2021학년도까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고뭉치 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올해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끈질기게 아이를 상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저 혼자 고민도 많이 한 끝에 어느 정도 아이와 라포도 형성하고, 문제 행동 원인도 차차 알아가고 있으며, 어느 정도 통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제 내향성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를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밀어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교사를 꿈꾸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성격이 내향적이라고 해서 그 길을 포기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향이 직업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성향은 교사로서 고유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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