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생님의 섬생활 고투기
여기를 봐도 바다, 저기를 봐도 바다인 이곳은 섬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탁 트인 바다가 전망인 학교를 낭만이 있다고들 하시겠으나, 집을 나와 직장으로서 근무하는 이곳 생활에서 감상하는 풍경은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그 아름다운 풍경이 저에게는 곳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매주 입/출도를 하게 될 시간이 다가오게 되면, 어김없이 날씨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풍랑이 어떤지, 안개는 어떤지를 살피며 이번주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안전하게 학교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서 '바다'는 취미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설령 바다와 관련된 무엇인가가 취미가 되어버린다한들 금방 따분해지거나 저에게 있어서의 '생활'의 의미가 더욱 강해지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는 것이 바다와 갯벌 뿐이기에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초과근무(물론, 일이 정말 많아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는 합니다.)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지요. 작년에 초임발령을 받고는 새내기 교사의 열정이 뿜뿜하여 교재 연구나 다른 업무를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하는 초과근무가 돈과 상관없이 즐거울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이런저런 나쁜 일들을 겪고 나니, 학교에 대한 정도 열정도 다 떨어져 초과근무만큼 지옥인 시간이 따로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일이 많아도 최근에는 저만의 시간을 좀 가져볼까 하고, 빠른 퇴근을 하는 날을 의무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아까 여기에서 제가 그동안 해 온 유일한 취미생활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보기라고 말씀드렸었죠? 이것 역시 1년 이상 하다 보니 많이 질리더라구요. 저에게 뭔가 신선한 취미 생활,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취미 생활에 대한 욕구가 솔솔 불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꽤 오랜 시간 고민하여 결론을 내었습니다. 약 5년 전에 친구에게 중고로 산 미러리스 카메라를 활용하여 사진 찍기를 취미로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사체가 될 만한 것들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곳곳에 늘어져 있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담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카메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보며 공부하기에는 뭔가 부담스러워서, 다양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카메라 각 부위의 명칭과 렌즈 고르는 법, 조리개 값, 셔터 속도, ISO값 등을 조정하는 것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직 이해가 안 가는 개념과 명칭들이 너무 많지만 제 무료하던 인생이 조금은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 같습니다. 왜 흥미가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임용고시를 통과한 후에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교사라는 직업이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평생 전공하고 있는 학문을 교과서의 형태나 다른 연수 자료의 형태로 반복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움의 참신함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참신한 배움이 저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무엇인가 새로운 취미 생활의 수혈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퇴근을 하고, 교실에 남거나 관사에 들어가 휴대폰이나 탭으로는 카메라 관련 영상을 보면서 손으로는 카메라를 이렇게 저렇게 조작하며 실습을 하고 있으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 있습니다. 간만에 취미라는 것을 통해 엔돌핀이 도는 느낌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게는 취미라는 것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학창 시절에 취미를 적어 내라는 종이에 도대체 무엇을 적어 내야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빈 칸으로 낸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독서를 적어내고는 했죠. 그렇지만 그것들을 하면서 흥미를 크게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뭔가 새로 배우는 기분이 좋고 성취해가는 기분이 좋으니까요.
최근 결혼 준비로 인해 여러모로 돈이 들어갈 곳이 많은 상황(24년 결혼 예정입니다 ^^)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저의 취미생활을 위해 새로운 단렌즈(16mm f2.4)를 구매했습니다. 살짝 사치스럽다는 느낌도 들지만, 취미는 역시 장비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