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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May 01. 2023

ADHD 유형탐구(4) "늘 바쁘고 힘들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ADHD 이야기

대학교 4학년 22세 여성인 문세미씨는 3년 전부터 여기 정신건강의학과에 간헐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늘 긴장된 상태로 지내고 사회적 상황에서의 수행에 극도의 부담을 갖는 세미씨를 선생님은 범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의증으로 진단하고 그동안 불안에 대한 약물치료와 간단한 인지치료를 진행해 왔습니다.


문: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왔지요?

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잘 지내실 때는 안 올 수도 있지요.


문: 헤헤. 잘 지낸 거는 아닌데요.

샘: 네. 네. 그렇지만 요즘 더 힘들어지신 거죠? 혹시 시험기간인가요?


문: (시선을 내리깔며) 네.  그래도 전에는 시험 한 달 전부터 불안했다면 이번에는 시험 주간에 왔어요.

(다시 눈을 마주치며) 그런데 선생님. 이제 저도 졸업반 4학년인데 왜 아직도 시험기간만 되면 이렇게 불안할까요?


샘: (신 선생이 잠시 기억을 떠올리느라 수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음.. 예전 상담 중에 세미 씨가 말하기를 '주변 사람들이 당연히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 게' 너무 부담된다고 한 게 기억이 나네요.


문: 네....  저는 시험기간에 죽을 만큼 힘든데요...  애들은 '어차피 A학점  거면서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라고 하니까..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말도 못 하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샘: 힘든 것을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그뿐 아니라, 전에 지도 교수님도 세미 씨가 언젠가 B학점 한 개 나온 것을 "집에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셔서 충격이었다고 하셨었죠.


문: 네. 그게 가장 힘들어요.  부모님도, 교수님도 장학금 받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제가 모교에 계속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샘: (신 선생은 늘 하던 습관처럼 고민하는 표정으로 왼쪽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근처를 지그시 누른다)  음.. 글쎄. 4학년이 된 현재, 세미 씨는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대학에 남는 것을 원하시나요?


문: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게 당연한 것처럼 되었는데,  앞으로 평생 공부하면서 연구실에만 있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숨이 막혀요. 그렇게 힘들게 계속 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샘: 그러니까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 이긴 하지만.. 지금은 시험기간인 관계로 세미 씨를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네요.  지난번에 세미 씨에게 효과가 좋았던 가벼운 항불안제를 동일하게 드릴 텐데요. 시험 끝나고 이 문제를 상의하도록 꼭 오셔야 해요~! 그리고 시험 끝날 때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고이 접어두기로요.


문: 네. 그럴게요. 이번에는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오겠습니다!


<일주일 후>


문: 시험이 끝나니까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샘: 다행이네요. 이제 다른 신경 쓸 일은 당분간 없는 건가요?


문: (울상을 지으며) 아니요. 실은 내일부터 할 일들이 쌓여있어요. 학생회를 하고 있어서 동아리 축제 준비도 해야 하고 취업 박람회에도 가야 하고요. 졸업 조별 과제 모의 연습도 해야 하는데 제가 조장이거든요.  제가 조원들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돼요.


샘: 오.  세미 씨.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성적도 거의 과탑 수준으로 챙기면서 학생회 활동도 하고 여러 가지 책임을 맡고 있군요.


문: 네. 제가 이게 문제예요. 실은 여유 있게 지낸 날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거절을 못하는 건지. 오지랖인 건지.  


샘: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세미 씨가 원하는 생활이 아닌가 보네요.


문: 네! 저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요.  동기들도 미쳤다고 해요. 학과 공부로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왜 다른 일을 맡냐고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지난주에도 동기인 OO가요. (당시에 동기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샘: 그러게요. 저도 궁금하네요. 처음에 2년 전에 처음 오셨을 때 초진 기록에요.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한 게 쓰여있네요.  사람들이 안 좋게 평가할 것이 무섭다고 하셨고요. 그때는 대인불안 증상도 꽤 심하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쭉 상담하면서 알게 된 게, 세미 씨는 대개의 사회불안 증상이 있는 분들과는 다르게 대외적인 활동을 제법 하시는 편이거든요.


문: 네.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 평가가 정말 부담스러운 것은 맞는데요. 늘 사람들과 부대끼고 마음 고생하는 뭐를 맡고 있더라고요.

샘: 음.. 그 말씀으로 보아, 세미 씨가 사람들 시선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에 한해, 세미 씨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굉장히 의식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아이러니는요.
세미 씨가 그런 평가받는 상황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문: (뼈를 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  그러네요. 선생님. 정말 그러네요. 보통은 힘들면 그런 상황을 피할 텐데요. 굳이 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왜 그런 걸까요?


샘: 굳이 피하지만 않았을까요? 피하지 못한 면도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세미 씨가 그런 역할을 맡기를 기꺼이 수락해왔는지도요.


문: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음.. 거절하는 게 어렵기도 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대학교 때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일부로 피할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샘: 그렇다면 맡은 일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문: 음. 네. 그런 것 같아요. 음.. 그런데 꼭 그런 이유 때문 만은 아니고.. 음.. 모르겠어요.


샘: 혹시..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이요. 나중에는 힘들어서 후회할지언정,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 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문: 네. 네! 맞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하고 싶어서 한다고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항상 시간에 쫓겨서 후회하고. 그렇게 계속 반복한 것 같아요. 작년 학기 초에도 말이죠..........

 (세미가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한다.)


샘: (다음 예약자 시간을 약간 넘긴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다소 급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하며) 그렇군요. 지금 나가실 때 10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설문 한 개를 드릴 테니 작성해 주세요!

 

신 선생은 세미가 오늘 상담에서는 말을 편히 잘하는 것이 불안에서 벗어난 것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는 한편, 세미가 실제로는 꽤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미가 작성한 설문은 AARS라는 성인 ADHD를 가려내기 위한 자가보고 설문 검사다. 증상을 평가하는 55개의 문항과 생활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는 6개 문항, 그리고 운전관련한 11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미가 작성하고 간 설문을 채점한 신 선생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일주일 후>


샘: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작성하신 설문 결과부터 설명드릴게요.

문: (긴장한 표정이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본다)


샘: 작년에 언젠가 세미 씨가 시험을 앞두고 집중이 너무 안 된다고 한 적 있었죠? 그때 제가 긴장 때문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시험 기간 끝나고도 집중하기 곤란함을 느끼면 성인 ADHD 관련 평가를 해보자고 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말씀드렸던 검사가 이거예요. 물론 이 검사 결과만으로 진단하는 것은 아니고요. 세미 씨가 여기서 체크한 어려움이 어릴 때부터 이어지는 문제이고 또 주의력을 평가하는 인지력 검사에서도 손상이 나타나면 ADHD로 진단이 될 수도 있어요.


문: 어? 거의 다 높음 높음으로 되어있네요.

샘: 네. 그러네요. 생각보다 점수가 높게 나타나서 저도 약간은 놀랐네요.  총점이 134점 이상이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요. 140~150점 정도이더라도 불안, 우울과 같은 정서적인 면을 많이 체크할 때도 전체 점수가 올라갈 수도 있어서 진단하기에는 그렇게 높은 점수는 아니에요.


문: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저는 172점이네요!


샘: 네. 부주의가 43점 컷에 61점, 과행동이 11점 컷에 15점이에요. 정서면이 36점 컷에 55점으로 꽤 높게 나왔네요. 충동성, 반사회성, 비조직화 쪽은 기준 아래이구요.  이 결과로 보면 주의력 저하 타입의 성인 ADHD 가능성이 높겠어요.


문: (모니터 결과를 보고 이해를 하려는 것인지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대답이 없다)


샘: 세미 씨. 여기 설문에서 '항상 그렇다'인 높은 점수로 체크하셨던 문항을 다시 쭉 읽어드릴게요. 그 내용 관련해서 추가해 주실 설명이나 기억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집중해서 들으려고 해도 딴생각이 나서 필요한 정보를 놓친다.

주변의 소리나 일 때문에 신경이 쓰여 자기가 하던 일을 못  한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방금 읽은 것도 무슨 내용인지 몰라서 다시 읽게 된다.

업무 처리가 일관성이 없고 들쑥날쑥하다.

하려고 했던 일들을 자주 잊어버린다

체계적이지 못해서 일을 하는 게 어렵다

모험을 즐기고 때로는 무모한 일을 한다.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

쉽게 자제력을 잃는다.

자주 속상하거나 우울해지거나 기분이 가라앉는다.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룬다.

겉으로는 괜찮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다.

지루하거나 반복되는 일을 할 때 집중을 유지하지 못한다.

과거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나 자신을 믿기 어렵다.

일의 주제나 맥락을 잘못 이해할 때가 있다.


문: 검사하면서 정말 느낀 게 많았어요. 제가 남들 말을 제대로 못 듣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선생님 말이 정말 안 들려서 거의 다 필기를 했거든요. 듣기는 해도 머릿속에 내용이 안 들어왔어요. 대학교 때는 당연히 제가 못 듣는다고 생각해서 이해하는 것은 포기하고 교수님 말씀을 거의 다 필기해서 집에서 다시 공부했어요.


샘: 아 그렇군요. 그래서 늘 바빴겠네요. 그런데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지겠죠? 위로 올라갈수록 공부 분량이 많아지니까 필요한 것만 골라서 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대학교 교재는 정말 광범위하잖아요?


문: (울상을 지으면) 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시험기간만 되면 울면서 공부했어요. 엄마한테 짜증도 많이 냈구요. 수업시간에 필기만 했으니까 그날 집에 가서 복습 안 하면 정말 난생 처음 보는 것 같거든요.  가고 싶은 대학교는 내신이 필수였구요. 그래도 수학 같이 문제 풀이 위주로 하는 과목은 그냥 풀면 되니까 부담이 덜 했던 것 같아요.


샘: 아. 그렇군요. 시험기간이 되면 불안해진 게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때부터네요.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그리고 제가 의외라고 생각한 문항이요. "모험을 즐기고 때로 무모한 일을 한다" 정말 그런가요? 지금까지 세미 씨와 대화하면서 머릿속에 그려진 모습과는 많이 다른데요?


문: 아. 저도 제가 이해가 안 될 때가 자주 있어요. 예전부터 여행가는 것을 좋아해서 거기에 가고 싶다고 느끼면 바로 그 주에 떠날 때도 많았구요. 대학교 1학년 때도 그렇게 일주일 만에 준비해서 해외여행을 갔어요. 근데 제가 정말 겁이 많거든요. 아시다시피 건강 염려증도 있고 사고 날 까봐 걱정도 많구요. 그런데 에버랜드에서 T 익스프레스 같은 쓰릴 있는 놀이기구는 좋아해요.  지금까지 사람들 시선이 무서울 때가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 남자친구도 만난지 하루 만에 사귀기로 했거든요.


샘: 흥미롭네요. 그런 면이 있으시셨군요.

해야할 일에 쫒겨서 지쳐있고, 평가로 인해 위축되어 있어서 그렇지 세미 씨 안에는 모험심 있고 새로운 경험을 갈구하는 자아 살아 있네요.

(신 선생이 재미있는 듯 웃음을 짓는다)


문: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평상시에 걱정 많은 제 모습과 겁 없이 직진하는 모습 중에 어떤 게 제 모습인지 헷갈려요.


샘: 그래서 지금 세미 씨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해 이렇게 상담하고 평가를 하는 중인거죠. 이전 상담 때 그렇게 바쁘면서도 학과 일도 맡고 다른 일에 얽혀서 고생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네요. 하하..


문: (멋쩍어 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말하려는데 신 선생이 틈을 주지 않고 말을 꺼낸다)


샘: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 나누기로 하고요. 한 가지 요청드릴 것이 있어요. 정부 24에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조회가 가능한데요. 인쇄해서 가져와주시기를 부탁할게요.

문: 네. 그럴게요. (세미가 메모장을 꺼내 꼼꼼하게 기록한다)


<일주일 후>


문: 선생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가져왔어요.

샘: 부탁한 것을 바로바로 가져오시니 역시 모범생이세요.

(세미의 부담스러운 표정을 본 순간 말실수라고 생각이 들어 재빨리 화제를 생활기록부 내용으로 전환한다)

음.. 여기 3학년 때 생활 태도 기록에 탐구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잘하는 학생으로 쓰여있네요.


문: 네. 아주 어릴 때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을 했던 것 같아요.


샘: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군요. 주로 어떤 것에 흥미를 갖고 관심을 가졌나요?


문: 아주 어릴 때는 생물을 정말 좋아했어요. 간단한 실험이나 만들기가 있는 수업도 좋아했고요.


샘: 대학생 때와 달리 자기주장도 잘할 줄 아는 아이 었네요.


문: (멋쩍게 웃으며) 네. 저도 이거 보고 알았어요. 그때는 잘 못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었나 봐요. 언제부터 내가... Oㅁㅇㅁㅇㅇㅁㅇㅁ..(잘 들리지 않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들린다)


샘: 네?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문: 아. 별 말 아니에요. 이랬던 제가 지금은 남 의식을 많이 하고 살고 있는 게 의아해서요.

샘: 그럼. 언제부터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세미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살짝 인상을 쓰면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문: 실은 6학년 후반 때요. 친했던 친구와 싸우고 사이가 나빠진 일이 있었어요.  4학년 때 같은 반 되면서 친해졌는데 중학교 수학 선행하는 학원에 같이 다녔거든요. 그 무렵에 학교에서 과제 발표도 있었고, 스피치 대회도 나가야 하는데 수학 학원도 어려운 거 진도를 나가고 있어서.. 그때 원뿔 넓이 구하고 그랬던가?   아무튼. 그때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도 가장 친한 친구 앞이니까 힘들다고 걔 앞에서 자주 투덜거리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던가? 너 힘든 거 안 믿는다고 어차피 잘할 거면서 왜 맨날 힘들다고 하냐고요. 그때 엄청 충격 받았았어요. 그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른 애들과도 말을 안 하고 지냈어요.


샘: 그 친구한테 속상한 말을 들은 건데 왜 다른 애들과도 대화를 단절한 건가요?


문: 가장 친한 친구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애들은 더 안 좋게 생각할 것 같았거든요. 이미 애들이 나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말을 안 걸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가서는 애들한테 힘들어하는 티를 안 내고 밝은 표정으로 보이려고 항상 의식했던 것 같아요.


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무래도 애들한테 안 좋게 보일까 봐 걱정이 많았다면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어려웠겠네요.


문: 네. 밝게 보이려고 노력한 건데 애들은 제가 늘 밝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때.....  (당시 친구들에게 들었던 표현들을 기억해 내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지속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샘: 혹시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도 있었나요?

문: 아~~~~  네!  "세밀러 문"이었어요!

샘: 일단 성이 문 씨니까 어울리네요. 그런데 '세일러 문'이 아니라 '세밀러 문'이요? 아.. 세미씨니까..


문: 네! 그때 중학교 2학년 때인데요. 그때 반장을 했거든요. 근데 좀..  고지식한..  입 바른 소리를  제가 자주 했나 봐요.  그리고.. 그런 상황이 아닌데, 그때 분위기에 맞지 않게 정의롭게 나서는 그런 의미인가? 좀 엉뚱한 의미도 있었어요.


샘: 아하. 그렇군요. 정의로운데 뜬금없는 그런 맥락으로..?


문: 네. 네. 네.  처음에는 세일러 문이었어요! 근데 제가 하도 원칙을 고집하거나 세밀한 것까지 맞냐 틀리냐에 집착한 일이 몇 번 있어서 친한 친구가 세밀러로 바꿔줬어요. 호호호..


샘: 하하하.  그리고 디테일한 것에 한번 꽂히면 깊게 들어가는 경향이 당시에도 있었나 보군요.

문: 네. 그랬나 봐요.


샘: 뜬금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신 건가요?

문: 음.. 그때. 제가..  가끔 엉뚱하게?  아니. 좀 상황을 잘 이해를 못 해서 딴소리를 할 때가 있었나 봐요.


샘: 이전에 ADHD 진단 설문 하면서 선생님 수업 듣는게 힘들어서 필기를 다 해서 집에서 다시 공부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친구들 말도 놓치거나 잘 이해 못할 때도 있었나요?


문: 네. 맞아요. 혼자 멍하니 제 생각하다가 애들 말을 잘 못 들을 때가 많았어요. 그건 지금도 그러네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항상 메모장이나 수첩을 들고 다니잖아요.(세미가 멋쩍은 듯 하면서도 활짝 웃는다)


샘: 다음 주에는 CAT라는 주의력 검사를 하실 거예요. 혹시 검사 전날 잠을 제대로 못 거나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검사 결과에 영향을 주니까 꼭 연락해서 다시 잡으셔야 해요. 그 외에는 특별히 준비하거나 신경 쓸 것은 없으니까 편하게 오세요.


문: 네. 선생님.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세미 씨의 CAT 결과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억제지속 주의력은 정확도는 정상 범위지만 수행 시간이 느린 편으로 저하로 나타났고,

간섭주의력, 분할 주의력 오경보 반응에서 경계 수준으로 나타났고 그 외에는 정상 반응이었다.


신 선생은 세미에게서 지금까지 들어왔던 정보와 설문검사 등을 토대로 성인 ADHD로 진단하였고 세미와 상의 하에 약물 치료를 시작하기로 한다.


(상기 사례는 진료를 받았던 특정인의 개인사가 결코 아니며 상당수의 성인 ADHD 진료 경험을 토대로 한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과 참고 문헌의 사례를 재구성하여 작성한 가상의 사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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