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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Jul 14. 2023

성인 ADHD의 진단평가 (여성동아 7월호 기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ADHD이야기

나미 씨는 대학 졸업 후 불과 2년도 안 되었는데 벌써 세 번째 직장입니다.

첫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둘 때는 직장 분위기가 너무나 권위적이고 자신과 맞지 않았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구직한 지 한 달 만에 더 좋은 직장에 합격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잘해보자'는 각오로 의욕이 넘쳤고 주변으로부터 ‘활발하고 적극적이다’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5개월 차에 들어가면서 사수인 대리님이 그녀 앞에서 한숨을 쉬는 일이 잦아지고 처음에 좋은 평가를 해주셨던 과장님도 소소한 실수들로 인해 실망하는 눈치입니다. 나미 씨는 자신이 말을 꺼낼 때마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이 모두가 자신에게 뭔가 유감이 있거나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말을 피하는 것 같이 느꼈습니다. 결국 자신이 민폐라고 생각이 들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8개월 만에 직장을 떠났습니다.


6개월 만에 어렵게 찾은 세 번째 직장은 첫날부터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고 주눅이 들어 인계를 해주는 선배의 말이 들리지가 않고 목소리는 기어들어갑니다. 나미 씨는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이 들며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담스럽고 누가 자신의 이름만 불러도 손에서 땀이 나고 초조함을 느꼈습니다. 그럴수록 사무실 내에 사소한 소음이나 전화벨도 신경이 쓰이고 도무지 일에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이번만큼은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는 없기에, 나미 씨는 인근 정신건강의학과를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갑니다.


나미 씨는 첫 진료 후 우울증 의심하에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직장에서의 과도한 긴장과 퇴근 후 찾아오는 끊임없는 자책감이 줄어들면서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이 좋아지고 나서도 머릿속에 제어가 안 되는 실타래 같이 얽힌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미 씨는 대학생 때도 늘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주변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하냐고 물어올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약속 시간에 조금씩 늦거나 과제를 기간 내에 신속히 마무리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동아리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맡은 일을 일정에 따라  진행시키느라 무척 애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교 때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못 들어서 자꾸 되물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늘 스스로 청력이 안 좋다고 생각해 왔다고 합니다. 지루한 수업은 거의 흘려듣고 딴생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보냈고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집중해서 재밌게 들었던 상황을 기억해 냈습니다.


3개월 후, 담당 선생님은 나미 씨의 보고를 토대로 ADHD가 의심된다며 전산화 주의력 검사를 시행한 후 나미 씨를 ADHD로 진단하게 됩니다. 직장 생활과 대인관계에서 겪은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온 나미 씨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성인 ADHD 진단을 받게 된 것일까요?


성인에서는 아동 ADHD의 산만하거나 부산한 행동과 같이 쉽게 눈에 띄는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소한 걱정과 신경쓰임, 마음 방랑,, 부주의한 실수, 선택적 집중력 발휘, 환경에 따른 기능 수행의 편차와 같이 내적인 생각이나 눈에 띄지 않는 습관적 행동 혹은 게으르거나 눈치가 없는 성격적 경향처럼 나타나기에 진단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아동기에 일시적으로 눈에 띄었을 ADHD 증상은 대개 청소년기가 되면 감춰지면서 학업 부진이나 의욕 저하,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나타납니다. 초기 성인기에는 업무 수행뿐 아니라 사회생활 및 자기 관리 등의 복합적인 기능을 요구받는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업무나 관계 상의 부적응으로 인한 우울, 불안이라는 정서적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ADHD가 있는 아동기 남아들은 과행동/충동성 증상이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부모나 선생님이 진단 의뢰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여아들은 내적 증상인 주의력 저하 유형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남아보다 2배 이상 높다 보니 진단을 놓치게 되기 쉽습니다. 여아에서 놓쳐진 ADHD 문제는 점점 자존감 저하나, 우울감, 정서 불안으로 나타나고 남성들보다 증상을 보상하는 대처 기술을 여성들이 더 잘 사용하기 때문에 성인 여성의 ADHD는 진단하기 무척 어렵게 됩니다.


최근 발표된 2017~2021년 건강보험공단 진료 데이터에 의하면 학동기 아동에서 ADHD가 진단되는 성비는 여전히 남아가 여아에 비해 3~4배가량 높습니다. 그런데 성인 ADHD에 대한 대규모 조사에서 보고한 성인 ADHD 남녀비가 거의 대등한 것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지금껏 진단되지 않은 ADHD의 잠재 인구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역사적으로 성인 ADHD라는 질환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식적인 진단 기준인 DSM-5(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에서 성인 ADHD의 진단은 소아에서 쓰이는 기준을 일부 수정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진단할 경우, 소아와 다른 성인만의 특징적인 양상이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진단을 놓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진단 기준이나 온라인에서 검색되는 테스트보다 성인에서 ADHD를 의심할 수 있는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 잘할 것 같은 기대에 비해 늘 성과가 부진하다.

-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못하여 필요한 정보를 놓친다

- 순서나 중요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일을 하기가 어렵다

-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 기다리는 상황이나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가 힘들다.

- 우선 해야 할 일을 하다가도 어느새 덜 중요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 업무 성과나 학업 등 기능 수행이 환경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 감정 기복이 심하고 짜증을 잘 낸다.

-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거나 약속을 자주 잊어버린다.

   혹은 강박적으로 물건을 챙기거나 일의 세부사항을 과도하게 확인한다.

-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들거나 대신 나서는 경우가 많다.

- 눈치가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평가에 민감하다.

- 하기 싫은 일은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원하는 일은 무모할지라도 추진한다.

- 늘 머릿속에 생각이 끊이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다 신경 쓰인다.

- 일의 주제나 맥락을 혼자 잘못 이해하고 말로 표현하면 장황하고 두서가 없다.

- 갑자기 새로운 일(활동)을 시작하거나 평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한다.

- 특정 감각이 과도하게 민감(발달)하고 자극을 무시하는 것이 어렵다.

-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을 미루려는 경향이 있고 일정한 수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여러 자가 검사들 중에서 위와 같은 특성이 잘 기술되어 있는 진단 도구로는 K-AARS(adult adhd rating scale)라는 질문지가 있으며 55개의 문항을 점수화하여 진단에 사용합니다. 그리고 전산화 신경인지 검사인 CAT(comprehensive attention test)나 CPT(continuous performance test) 등을 통하여 진단 가능성은 더 높이게 됩니다.


ADHD가 진단이 되었을 경우, 주로 중추신경자극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을 처방받게 되며 투약을 받은 대상의 80% 이상에서 주의력과 충동성이 호전되는 효과를 체감합니다. 온라인 검색에서 보이는 투약 체험 수기와 같이 ‘먹어보면 안다’ ‘나에게 맞는 안경을 드디어 찾았다’ ‘흐리게 보였던 세상이 선명하게 보인다’라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경험한 분들은 제 진료 경험상 치료 대상의 30% 이내입니다. 더 다수의 경우에는 수 주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자신에게 적합한 약물과 용량, 복용 시간을 찾는 조정 기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투약 초기에 효과가 없다고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진단이 되었다고 반드시 ADHD 치료제를 복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능이나 사회적 기능이 좋은 아이들은 부모님의 적절한 격려와 구조화된 환경 조성을 통해, 혹은 성장기에 좋은 모델링을 제공해 주는 멘토 등을 만나면서 어릴 때부터 규칙적인 습관, 적합한 환경 찾기, 분류하고 기록하기 등의 체계화를 통해 ADHD 대처 기술을 자신도 모르게 꾸준히 익히며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ADHD 경향으로 인한 취약성을 자신의 본질이나 성격으로 여기지 않고 자책하지 않도록 자신을 이해하는 관점을 갖는 자체가 살아가는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DHD 증상을 피하기 위해 습관화된 대처 방식이 오히려 강박적이거나 소모적이어서 신경이 예민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때는 ADHD 치료제가 아니더라도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통한 치료제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여러 정보를 수집한 끝에 성인 ADHD가 의심되더라도 결코 간과하지 않아야 할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스스로 ADHD라고 의심이 되는 특징과 행동 패턴이 평소에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그런 경향들이 다른 형태로 지속되어 왔던 증거나 기억을 잘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최근 겪게 된 급성의 우울이나 불안, 스트레스로 인하여 ADHD와 관련한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라면 섣불리 ADHD 진단 검사를 받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어려움이 개선된 후에 자신의 평상시 상태를 기준으로 검사를 받아보세요.


최근 자극적이고 습관성이 높은 미디어 콘텐츠나 SNS 사용이 늘어난 환경도 자신을 주의력 문제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진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나서 제대로 된 평가를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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