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이사를 며칠 앞둔 밤, 문득 다 채워지지 않은 보증금과 앞으로 내야 할 복비, 이사 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남은 며칠 사이, 여러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어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어도 된다고 말하던 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어요. 멋지게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이제 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삿짐을 챙기며, 집안을 쓸고 닦고 정리하며, 저는 홀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누구라도 있으면 기대고 싶고, 도와준다는 그녀의 말을 괜찮다고 밀어낸 저를 때때로 나무라기도 했어요. 도와달라고 말할 용기만 있다면 나는 외롭지 않았을 텐데.
편의점에서 75리터짜리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사 왔습니다. 찬장에 두고 쓰지 않은 물건들,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들, 언젠가는 입겠지 하고 옷장에 박아둔 옷들, 고장 난 물건을 모두 버렸어요. 지난겨울, 추위에 시들어버린 화분의 흙을 털어 버리고 한데 모아 정리했습니다. 방마다 쌓인 침대와 가구를 분해하고, 중고 거래 사이트에 새 주인을 찾길 바라며 수많은 물건을 올렸습니다. 퇴근 후에는 매일 짐을 정리했는데, 작은 집에 무슨 짐이 그리도 많이 쌓여 있는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두더지굴처럼 집안 곳곳에서 물건이 나왔습니다. 구역을 나눠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이 물건은 그때 누가 사준 것인데, 이건 누가 두고 간 건데, 아 여기에는 이런 추억이 있는데,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물건의 수만큼이나 이 공간에 쌓인 기억이 많은 탓입니다.
다시 돌아와 어느 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그녀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지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분명 자립하고 싶었는데요. 그녀의 도움을 받으면 자립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자립이 아닌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서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매번 나그네들에게 말했으면서 정작 저는 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는지. 오만했던 제 생각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시급했던 보증금 문제를 해결하고, 남은 이사비용과 복비는 한 공동체에게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전부터 여러 사람을 나그네방에 위탁한 공동체였기에, 제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도와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사하게도 공동체 일원의 만장일치로 필요한 비용을 후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어깨를 짓눌렀던 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빚을 졌지만, 새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되었어요.
나그네방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씨실과 날실로 엮인 연대 덕분입니다. 나그네방을 도와줄 손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죠. 마치 우리가 나그네의 손을 잡아준 것처럼, 나그네방의 손을 잡아줄 이들이 가까이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저 저는 손을 뻗으면 되었어요.
이삿날 당일 아침, 아버지는 트럭을 끌고 이사를 도우러 오셨습니다. 박스 테이프를 둘둘 감아 정리해 둔 이삿짐을 하나 둘 옮기고, 가전 가구를 옮기자 금세 일톤 트럭이 가득 찼습니다. 보문동에서 성북동으로, 나그네방 이사를 시작했어요. 이삿날 날씨가 얼마나 좋은 지, 짐을 나르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차창에 스치는 가을바람이 좋아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주 힘든 날에도 희망이 있는 것처럼, 이사 하는 내내 아버지와 감사를 나누었습니다. 계단을 수십 번 오르내리며 짐을 나를 때도, 무거운 박스를 드느라 어깻죽지에 근육이 뭉쳐 힘들 때도, 이삿짐 사이에서 떨어지는 회색 먼지를 뒤집어쓸 때도, 몸은 지칠지언정 마음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옆 동네 부동산을 뛰어다니며 매물을 찾던 7월, 새로운 집을 발견한 8월, 집을 계약하고 대출 신청을 하던 9월,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새집에 이사 온 10월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집 앞에 홀로 찾아와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던 날도 있었지요. ‘이 집을 주시면, 나그네방을 계속 운영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제가 정말 열심히 할게요’라고 기도하던 수많은 밤이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이사 과정이었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먼지 구덩이에 홀로 앉아 있는 나를 초라하게 바라보지 않는 일이었어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구원하는 일.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이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애써 침착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제게는 기대어 쉴 나그네방이 있고, 부족하면 손을 잡아줄 친구들이 있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면 응해줄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을요.
나그네방이 이사를 하고 서너 일이 지나, 시즌4의 첫 나그네가 입주했습니다. 그녀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과 함께 꾸려갈 우리 집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나그네방이 정말 잘 이사했고, 우리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부디 계신 곳에서 늘 안전하고 평안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