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된 지 10년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였다. 아이들은 내 손을 잡고 웃고 떠들었고 남편은 하루를 데리고 뛰다 걷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추워서 걷기 힘든 계절이 오겠다며 우리는 더 열심히 걸었다. 아이 생일의 마무리로 밤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엄마가 자기 전화 안 받는다고 전화하셨네?"
1-2분 정도 되려나. 짧은 통화를 마친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는 씩 웃으며 어머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은 나와 발을 맞춰가며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곧 수화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은 신기할 정도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신다. 그것도 꼭 필요한 순간에 말이다. 나는 어머님에게 속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언제부터였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어머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점점 솔직해졌다. 남편과 싸운 날이면 울면서 어머님을 찾기도 했고 아이들 키우며 난관을 만날 때마다 어머님에게 기댔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속상할 때 힘이 들 때 어머님을 찾았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셨다. 내게 필요한 조언들을 해주셨다.
그런 어머님에게 딱 한 가지 털어놓지 못한 말이 있었다. 바로 친정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것들이다. 처음엔 창피해서 못했고 어느 순간엔 내 얼굴에 침 뱉기란 생각에 숨겼었다. 용기가 없었다. 어머님이 친정 엄마의 안부를 물으실 때면 어머님을 속이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무거웠다.
최근 심경의 변화를 겪고 나는 내 마음 편한 길을 택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포기했다. 이렇게 살다간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그렇다. 살고 싶어서 놓아버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상이 달라졌다. 며칠 전 어머님에게도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네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으면 그랬겠니. 말하지 그랬어. 말했으면 내가 들어줬을 건데..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다. 마음 편하게 해. 그리고 내 가정이 제일 우선이야. 고맙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잘 커줘서 고마워. 아이들도 잘 키워서 고맙고. 애썼다. 정말 애썼어."
친정 엄마에게 그렇게도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을 어머님에게 들었고 그날 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어머님은 더 이상 내게 시어머니가 아닌 친정엄마 그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친정 엄마와 나눌 수 없는 감정들을 어머님과 나누고 싶다는 나의 고백에 "그럼 너만 좋은 게 아니고 나도 좋지. 고맙다." 하신 어머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너도 오늘 축하받아야지. 애썼다. 애썼어. 낳아서 이만큼 키우느라고 애썼고 오늘 생일파티해주느라고도 애썼다."
이 말은 엄마가 된 지 꽉 채워 10년 된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꼭 듣고 싶은 것이었다. 오늘도 어머님은 내게 감동을 주셨다. 어머님 덕분에 내 마음은 꽉 찼다. 완벽한 하루가 지나간다.
어머님 감사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