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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11. 2022

추석을 보내며

작은 변화를 꿈꿉니다.

이번 추석 시댁의 모습은 여전했다. 차례를 계속 지내시겠다는 어머님은 주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셨고 아버님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응시하고 계셨다. 어머님과 함께 할머님을 모신 절에 다녀오고 바람을 쐬는 일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작은 어머님은 이번 추석에 오시지 않았다. 아가씨가 결혼하고 맞는 첫 명절인데 큰댁에 온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을 것이다. 막내 작은 어머님은 추석날 아침 차례상이 다 차려진 다음에야 도착하셨다. 내년 봄 막내 아가씨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명절에 들리셨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마음들을 모르는 바 아니면서도 왠지 모르게 작은 어머님들이 얄미워 보였다. 한편으로는 어머님은 왜 그러하지 못하실까, 안타까웠다. 


아버님은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일 수 없으신 모양이었다. 불쾌한 속내를 어머님에게 여러 번 드러내셨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아버님도, 그저 모든 걸 본인의 희생으로 감당하시려는 어머님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맏며느리라는 위치가 이렇게도 고달픈 자리라니.. 명절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올 추석엔 유난히도 마음이 시렸다. 나 또한 그런 맏며느리가 되길 모두가 기대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추석을 맞아 며느리들의 수고와 불만에 대한 뉴스가 오랫동안 흘러나왔다. 불공평함을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다. 그 뉴스를 식구 모두가 보고 들었지만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방 일이 궁금해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해보라고 권하시는 어머님의 말을 힘주어 자르며 하지 말라고 했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잘못된 것이라면 바꿔나가야 한다. 이런 명절의 모습을 정말이지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이번 추석도 여전했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다. 평온하면서도 지루했던, 감사하면서도 불편했던 시간들이었다. 기분 좋지 않은 고단함이 몸에 남았고 생각이 많아 머리가 다소 무겁다. 조금 느리더라도 현명하게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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