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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05. 2022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뒷이야기

어머님 마음 편하신 대로 하세요.

작년 추석, 어머님은 차례를 그만 지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님은 그럴 수 없다고 하셨지만 가족회의를 거쳐 한 발자국 물러나 주셨고, 올해 추석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사실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 시댁 모습이 어떨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늘 주방에 계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나가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영화를 볼까, 쇼핑을 할까. 둘 다 해도 괜찮겠다. 어머님과 팔짱을 끼고 갑천 산책도 해야지. 사진도 찍어드리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어야겠다. 어머님 친구분이 하시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셔야겠다. 그동안 애쓰신 어머님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고 혼자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그럴 줄 알았어. 변하지 않는다니까."


남편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남편 표정을 살피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친다. 설마 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님이시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무래도 차례를 계속 지내야겠다고 하셨다. 내려놓지를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게 아버님 때문인 건지 어머님의 의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님은 조금은 작고 또 조금은 느릿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언젠가 내 차지가 될까 봐 그게 겁나서 서둘렀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머님 말씀처럼 아직은 적당한 때가 아닌데 말이다. 



"어머님 마음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차례를 그만 지내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막상 그만 지내려고 하자 마음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물론 여러 입장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란 걸 잘 안다. 이건 내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어머님의 마음이 아닐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땐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편한 쪽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어머님이 정말 그만하고 싶으실 때 그만하세요. 근데요. 어머님. 너무 힘이 드는데 참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참고 견디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님은 고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만 틈을 내서 어머님 눈을 쳐다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함께 드라마도 봐야겠다. 친구분이 하시는 카페에 가지 못한다면 믹스커피를 타서 함께 마셔야겠다. 그래야겠다. 



남편은 시댁 모습을 누구보다 바꾸고 싶어 했다. 소파에만 앉아 계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일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으면 했다. 그 시간을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을 위해 썼으면 했다. 어머님을 편안하게 해드리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머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남편의 등을 쓸어내렸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남편도 알 것이다. 지금은 누구보다 어머님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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