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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Dec 13. 2022

부끄러움

엄마가 미안해

"딱 한 번만 다시 재보자."


순간 아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다시 재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그것 봐. 똑같잖아. 그만해, 엄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핑계를 대자면 작은 아이 때문(?)이다. 소아과에 갈 때면 키를 재곤 하는데 아이들이 키재기에 설 때마다 내 안에서 상반된 생각들이 올라온다. 정체기 없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작은 아이를 보면 '이젠 좀 천천히' 컸으면 하고, 눈에 띄게 확 크지 않는 큰아이를 보면 '이젠 좀 급성장기에 들어섰으면' 한다. 작은 아이가 큰아이보다 커지는 일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항상 괜찮다고, 키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론 늘 큰아이의 키를 신경 쓰고 있다. 쌍둥이냐는 말을 들으며 기분 나쁘지 않을까, 자기보다 동생이 더 커진다면 속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난다. 키 성장에 좋다는 칼슘, 아연 등을 챙겨 먹이고 큰아이와 함께 줄넘기를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꾸준히 하고 있다. 




"누가 더 크면 어때요? 동생이 좀 더 크면 어때요? 그런다고 언니, 동생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소아과 간호사님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누구보다 크고 싶은 사람은 큰아이 본인일 것이다. 무엇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늘 괜찮다, 괜찮다 말하던 엄마가 사실은 안 괜찮다는 걸 어쩌면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덤덤한 아이를 보며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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