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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18. 2023

이제는 말하고 싶다.

제대로 키우자. 똑바로 키우자고.

이제는 말하고 싶다. 무려 5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아이 친구 엄마사이로 만나 5년이 넘는 시간만큼 서로 마음을 나눴다. 아이 친구 엄마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와닿지 않을 만큼 매 순간 진심을 다했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관계를 맺는 나는 그 관계에 있어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결국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문자로 심한 말을 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였다. 처음에 그 문자를 보고 우리 아이는 문자내용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를 잃을까 봐, 그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질까 봐 걱정했었다. 고작 열 살짜리가 어디서 이런 모진 말들을 배웠을까. 엄마인 나 역시 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손이 떨리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직접 자기 아이를 끌고 우리 집 앞까지 와서 사과를 하는 그 아이 엄마 모습을 보고 용서하기로 했었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그 아이 엄마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당시 나는 화나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그 아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너희 엄마에게 네가 소중하듯이 우리 아이도 나에게 소중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듯 말했다. 열 살이었기에, 악의를 가지고 한 짓이 아니었을 거라는 믿음이 컸고, 어른이 나서서 아이가 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는 내 눈을 당돌하게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도 직접 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일을 시작으로 그 아이는 주기적으로 우리 아이에게 분풀이를 했다. 잘 지내다가도 본인 기분이 안 좋으면 입을 닫고는 우리 아이에게 문자로 공격을 했다. 그러곤 그 문자를 싹 지워버렸다. 이제 열 살이 갓 넘은 아이가 어찌 그럴 수 있는지, 그 아이 엄마를 보면 도통 상상이 안되었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늘 애쓰던 그 아이 엄마말이다. 나를 통해 자기 아이의 그런 모습을 알게 된 그 아이 엄마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미안해했다.


그렇다고 안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좋은 날들이 더 많았다. 아이들끼리 잘 맞는 부분이 많았고 서로를 아꼈다. 베프라며 항상 붙어 다녔다. 나 역시 그 아이 엄마와 많은 것을 공유했다. 운동, 독서, 글쓰기..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난 인연이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건 축복이라며 항상 감사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좋아했다. 


그 아이가 한 번씩 우리 아이에게 함부로 대할 때면 내 속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 아이 엄마가 미안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마다 넘겼다. 색안경을 끼고 그 아이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고, 나 역시도 그 아이 엄마를 친언니같이 의지하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그 아이의 상태를 걱정했고 함께 고민했다. 도움이 필요하다 할 때마다 발 벗고 나섰고 그 아이를 챙겼다. 그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길 누구보다 바랐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 문제가 터졌다. 같은 반이 된 두 아이의 관계가 위태로워졌다. 번번이 자기 기분 변화에 따라 입을 닫아 버리고 문자로 심한 말을 하고 말을 시켜도 대꾸하지 않고 째려보는 행동을 하는 그 아이. 한 번도 먼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도 이 관계가 정상적인 친구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또다시 우리 아이에게 심한 말을 하고 입을 닫은 그 아이는 심지어 교실에서 자기 노트에 우리 아이 욕을 쓰기까지 했다. 그 아이가 쓴 욕을 우리 아이가 직접 보았다. 우리 아이가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그 아이는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한 달이 넘도록 입을 닫고 째려보기만 할 뿐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 엄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아이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집에선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자기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미안해하고 난처해하며 내게 기다려달라고 했다. 우리 아이만 생각하면 이미 학폭을 걸었어도 충분한 일이었지만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를 진심으로 생각했기에, 그동안 쌓아온 시간들이 헛되진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한 달이란 시간을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불안한 마음에 손바닥 살을 다 뜯어 놓았으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믿었다. 기다렸다. 그 아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기를. 우리 아이만 한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그리고 사과해 주기를... 만약 그랬다면 우리 아이도, 나도 그 아이를 용서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을 가지고 유난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은 아이들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아이가 속이 상해서 혼자 분풀이로 욕을 쓴 게 뭐 어떠냐는 말을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구나.. 내가 뭐에 홀렸었구나.. 진즉에 이 관계를 정리했어야 했는데 내가 미쳤었구나.. 


우리 아이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넘겼다. 화가 났다가 속이 상했다고 우울했다가 또 분했다가... 힘든 시간들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불쑥불쑥 화가 난다. 차라리 만나서 할 말 다 하고 끝냈으면 지금보단 나았을까. 학폭위라도 열었으면 덜 답답했을까. 혼란스러운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가끔씩 그 아이도 그 아이 엄마도 우연히 길에서 볼 때가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와 그 아이 엄마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용서할 수가 없다. 


이 일을 겪으면서 아이도 나도 정말 많이 힘들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내 아이를 더 단단하고 인성 바른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보통의 상식이 통하는 그런 사람으로 키울 것이다.




불행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살면서 가끔 아니 자주 불편한 순간을 만났으면 좋겠다. 불안한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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