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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Sep 25. 2023

엄마란 존재에 대하여

상처받지 않을 용기

"그래! 니 새끼 얼마나 잘 키우나 두고 보자!!"




1년 전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원수사이에나 할 법한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고는 엄마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만해야겠다, 이러단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의견차이가 생길 때마다 엄마와 나는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다. 하지만 엄마의 막무가내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자기 입장만 내세우고 자기 말만 맞다고 우기던 엄마는 끝내는 나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말을 던지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그리곤 며칠 후 아마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연락을 하곤 했다.


1년 전도 그랬다. 딱 이맘때, 추석을 앞두고였다. 엄마는 내게 묻지도 않고 이모와 함께 우리 집에 오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시절, 마지막 학기 등록금 모자라는 100만 원만 빌려달라고, 졸업하고 첫 월급 받으면 바로 갚겠다고 울면서 무릎 꿇고 사정해도 빌려주지 않았던 이모였다. 엄마는 그 이모에게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왜?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으면서 내가 왜 보여줘야 하는 거지? 엄마는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이없다. 아직도 난 그날 밤 일이 생생한데,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잊었나 보다. 누구 하나 사과한 이도 없는데 말이다. 



"너도 나이 먹고 애 키우는 입장이니 그냥 대충 좀 넘어가라. 그렇게 따지지 말고. 다 지난 일인데."


"아니. 엄마. 나는 진짜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 마음이 열리질 않아. 보고 싶지 않고 나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불편해. 왜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은 거야? 묻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 결정하는 거냐고."



울부짖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알았어. 그만해. 너네 집 안가. 안 가면 그만이야. 너 안 본다. 안 보면 그만이라고. 니 새끼 얼마나 잘 키우나 두고 보자."




엄마가 내게 했던 막말은 정말이지 셀 수 없이 많다.

너는 참 유난스럽다.부터 시작해서

너네 집은 가면 너무 불편하고 싫다.

너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속물 같은 년.

너만 잘 살면 그만이지.

너 이혼하게 만들겠다. 등등



그동안은 내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서 꾹꾹 누르며 참고 살아왔다. 한때는 젊은 나이에 혼자된 엄마가 가여워 내가 참자 하기도 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척 연기하며 살았다. 내가 노력한다면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욕을 먹어도 때가 되면 딸노릇을 했다. 혼자 계신 엄마를 챙겼다.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다. 나는 아마도 착한 딸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엄마가 다른 아저씨를 만나고 다닐 때에도, 아빠가 돌아가시자마자 그 아저씨랑 살림을 합쳤을 때에도, 그 아저씨가 돌아가시자 내게 상복을 입혔을 때에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내게 사과한 적이 없다. 언제나 엄마는 당당했다.


내가 첫아이를 유산했을 때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멀어서 혼자 버스를 타고 올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살면서 힘든 순간을 만나 엄마를 찾으면 너만 힘드냐고 했다. 남편과 다투고 속상해서 전화라도 하면 너는 왜 그러고 사냐고 했다. 단 한 번도 내 마음을 들여다봐주지 않았다. 내가 받을 상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자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더 밉고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과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 곪아 터진 것이다. 엄마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나는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했지만.. 나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처럼 될까 봐 너무 겁나고 무서웠다. 차라리 원래부터 부모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끊어내려 했는데... 그것도 사실 쉽지가 않다.


남편도, 남동생도 그 누구도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만 유난스러운 사람,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한테 아직도 연락 안 해?라고 묻는다. 장모님한테 연락드려볼까? 한다.


아니. 난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냥 아무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보고 싶지가 않다. 싸우고 싶지도 않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조용히, 가만히 있고 싶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내게 엄마는 없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이 건강해지고 좀 더 힘이 생기면 모를까. 지금은 엄마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아빠 기일을 앞두고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연락을 해왔다. 1년 만에 하는 통화였는데 마치 어제 연락한 사람 같았다. 한숨이 나왔다.




가족이면 뭐든 다 묻어야만 하는 걸까. 상처받아도 그냥 대충 넘어가야 하는 걸까. 아니.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족이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꼭 사과를 하려고 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상처 많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또 괴로워할지 모르겠다.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왜 썼는지도 사실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진짜 한 번쯤은 다 털어놓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말이다. 

엄마에게 정말이지 묻고 싶다. 나에게 왜 그랬냐고.. 미안하지 않냐고...

그동안은 무조건 참고 숨기고 살아왔다면 이젠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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