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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싱턴 Sep 13. 2019

첫 번째 잡 인터뷰 (2)

judicial internship at the state court

disclaimer: 미국 법률, 법조계 용어를 가능한 한글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만,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한 픽션임을 알립니다.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하루는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의 주 법원에서 채용 설명회를 왔다. Judicial internship이라고, 법원에서 일하는 것은 연방법원(federal court)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고, 주 법원(state court)이라 해도 다들 이구동성으로 추천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빅 로펌" 정도의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사실 채용 설명회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저렇게 말이 빠르고 똑똑해 보이는 판사들과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주 법원에서 인턴 했던 선배들도 무척이나 멀끔해 보이고. 내가 저런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무엇보다 writing sample과 성적표를 내려니 더욱 쭈그러드는 마음.. 성적표야 그냥 인쇄해서 내면 된다 쳐도 지난 학기에 썼던 허접한 writing과제들을 writing sample로 다듬어서 내야 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법원에서, 뿐만 아니라 법률 직종 종사자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탁월한 글쓰기 및 리서치, 인용 실력이다. 특히 법원에서는 더욱더욱더욱 강조하는 편. 판사의 업무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작문 및 리서치이기 때문.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후에 채용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연방 법원 혹은 주 법원에서 인턴을 채용하는 판사들의 공고문이 올라와 있었다. 놀랍게도 개중에는 커버 레터(간단한 자기소개 및 해당 직종에 관심을 표시하는 레터)와 이력서만 요구하는 곳이 있었다. 일단 이런 곳들을 추려서 지원했다. 하지만 이런 곳이라도 인터뷰할 때는 라이팅 샘플이랑 성적표를 요구하겠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또다시 놀랍게도 지원한 당일에 한 판사님이 직접 메일을 주셨고, 언제 인터뷰할 수 있겠냐고 했다. 서류를 통과했어도 걱정이 되는 게, 법률 작문 과제 제출, 중간고사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2,3주 뒤에 하면 안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가, 바로 응답하지 않으면 아마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라는 무서운 말을 해서 하기로 했다. 판사님이 직접 메일을 주셨고, 빠르게 응답을 주셨고, 잘만 인터뷰하면 이거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정이 그러하니 이것도 그냥 면접에만 의미를 두자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하는 프로보노(무급 법률 봉사) 프로그램도 면접을 하자는 연락이 와 있었고, 나중에는 가정법원에서도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프로보노는 되겠지. 라는 생각. 작문 과제 제출, 중간고사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었다. 버려야 한다면 당장은 면접을 버려야 했다.

면접이 너무 빨리 잡혀서 교내 모의면접 실습보다도 먼저 하게 되었다. 실제 면접이 모의면접을 위한 연습이 되어버린 모양새이다. 어쨌든 모의 면접할 시간도 없었기에, 수트도 드라이클리닝을 부랴부랴 맡기고, 커리어 센터 카운슬러와 면접 연습을 하기로 했다. 면접 당일 아침에.

그래도 면접 연습을 하다 보니 꽤 도움이 되었다. 두 분에게 받았는데 한 분은 나와 자주 보는 카운슬러였고 다른 분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원에서 law clerk(재판연구원)으로 있던 분이었는데,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장을 조금 다듬어 줬고, 내 영어에 대한 평가도 해주었다. 끔찍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열심히 연습을 했다는 전제 하에. 좋은 얘기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고 스스로도 뭐 할 말은 했던 것 같다.

만반의 준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지만 어쨌든 내 나름대로의 준비를 마치고 간 면접은 내 생각과는 역시 많이 달랐다. 좋은 방향으로. 판사님이 너무 바쁘셔서 면접이 예정된 것도 모르시는 것 같았지만.. Deputy Sheriff(법원 경비)의 도움을 받아 판사실 로클럭과 만났고 꽤 느낌이 좋았다. 판사님은 처음 보자마자 "나 지금 재판 있는데. 올래? 아님 끝날 때까지 기다릴래?" "참관하겠습니다." 당연히 가야지. 안 가면 탈락 아닌가..?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로클럭들과 면접 비슷한 것과 아이스 브레이킹을 조금 했다.



-태권도 검은띠, 2단이네요?

-네.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다른 경험과 더불어 이것은 내가 멘탈리 피지컬리 스트렝쓰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레주메에 남겨 뒀던 것인데.)

-나는 주짓수 하거든요.

-아! 네.. 대단하십니다. 허허..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재판장으로 갔다. 그 외에도 학교 다니면서 무슨 과목에 관심이 있었냐, 같은 질문도 오고 갔었고. 이야기가 끝날 때쯤 판사님이 서류 뭉치를 주면서 "이것 좀 들어줄래?" 아, 물론이지요. 이런 건 재빠르게 들어야지. "벌써부터 내가 일을 시키네 ㅋㅋ" 이때 느낌이 좋았다. :)

나는 교내 모의재판에도 참여는커녕 참관 한 번 한 적 없고, 한국 법원에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literally 인생 첫 번째 재판 경험을 여기서 했고, 음. 꽤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잡 인터뷰는 끝이 났고, 학기 초의 걱정과는 다르게,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르게, 생각보다 빨리, 되기만 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던 법원! 에서 1L summer (일 학년 마치고 하는 여름 인턴)로 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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