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창조의 신비를 열어간다

두 바퀴로 창조의 신비를 열어간다

by 좋은나무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가을은 뭐라 해도 수확과 열매의 계절이다. 인생의 계절로도 무르익어가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맺힌 열매들을 점검해 본다. 나의 닉네임은 “좋은 나무”이다. 살면서 좋은 열매를 맺고 싶은 소망을 담아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해마다 나에겐 같은 종류의 열매가 조금씩 더 실하게 맺히기도 하고 아주 새로운 열매들이 열려 기쁨을 주기도 한다.

올해의 새로운 열매는 자전거를 타면서 맺힌 것들이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로 인해 온 세계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 시작되었다.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코로나로 답답해할 즈음 친구의 권유로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다. 이전에 남편과 아들이 나에게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 주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던 터라 과연 이번엔 성공할까 반신반의하며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강북에 사는 내가 어찌어찌하여 강남 송파구에 “자전거 21”이라는 사단법인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전거에 올라타기부터 3주 동안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코로나가 만연할 때여서 마스크를 쓰고 땀을 흘리면서도 빠지지 않고 매주 레슨에 나갔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첫 한강 연수 라이딩 나갔을 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앞뒤로 쌩쌩 달리는 고수 라이더들을 부러워하면서 그 틈에 덜덜 떨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꼬집어 볼 수도 없는 채로 올림픽 공원에서 성내천 둑 길을 지나 광진교까지 무사히 달려갔다. 자전거에서 내려 바라본 한강의 물줄기는 ‘어이구 잘 왔구나.’하며 한아름으로 안아주는 엄마의 품 같았다. 그날 이후 나의 한강 사랑이 시작되었던 것일까.

인생 최초의 한강 라이딩을 시작으로 나의 자전거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달렸고 작년 8월에는 국토의 남북을 종주하여 633km를 5박 6일 동안 완주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동서로는 연 6구간으로 나누어 총 520km 국토 횡단을 이루어냈다. 10월에는 2년마다 일본에서 열리는 “시마나미 국제자전거 대회”에 참가하여 전 세계 라이더들과 함께 달리는 짜릿함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연대감을 느끼며 파이널 지점을 멋지게 통과하는 쾌거를 누렸다. 올해 5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라이딩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찼던가!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콤포스텔라 광장에 들어섰을 때의 경건하고도 눈물겨운 감격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이 장면에서 한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스친다. 과거에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나에게, 그것도 환갑을 7년이나 넘긴 이 나이에 왜 이 엄청난 건강과 즐거움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일까.

나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이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자전거라는 안경으로 바라보는 창조의 세계는 그야말로 신세계다.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서 쭉쭉 나아갈 때 펼쳐지는 자연과 사람, 길, 마을에서 창조주를 만나고 그분의 마음을 읽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신 분의 마음은 분명코 자연과 함께 사람들이 행복하고 조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두 바퀴로 달릴 때는 펼쳐지는 길들이 마치 내게로 달려오는 것 같다. 소설가 김훈이 말한 것처럼 길이 내 몸을 통과해 뒤로 나간다. 그 통과하는 순간 나와 길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 바퀴로 만나는 선명한 계절의 변화는 피자연과 함께 피조물인 나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어느 늦가을 새벽 물안개를 가르며 동료들과 달렸던 섬진강 자락은 신비 그 자체였다. 누가 펼쳐놓은 산자락이며 물줄기인가. 그 새벽 우리가 달리던 마을길에서 산책 중이던 김용택 시인을 만난 일은 우연이라기보다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 여름 힘겹게 미시령 고개를 오르고는 시원한 바람에 땀방울을 날리며 내려갈 때 눈에 들어온 설악산의 신선한 자태는 자전거 속도로만 느낄 수 있는 미려함이었다. 자동차로는 휘익 지나가면 그 아름다운 풍경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 것이고, 걸으면서 바라보자니 가까운 데만 보이는 데다가 조금은 지루해질 법한 풍경이다. 그에 비해 두 바퀴로 달릴 때 다가오는 풍경은 아주 적절한 속도감에 전체와 부분적 세밀함의 조합이 아주 절묘하다. 자전거의 속도감은 무서움이 아니라 묵은 찌꺼기 같은 생각들을 날려 보내는 해방감이며 머리가 맑아지는 청량감이다.

두 바퀴로 달릴 때 영향받는 것은 바람이다. 이 바람은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어떤 강도로 불어올지 모른다. 기상 예고를 확인하기는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바람은 자기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심한 앞바람의 저항을 뚫고 나아가야 할 경우 누군가 내 인생길을 막아서는 듯 힘겹게 용을 쓴다. 옆바람으로 휘청거릴 때는 중심을 잡고 똑바로 가려고 집중한다. 그래도 가끔 등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은 내 노력보다 인생길을 수월하게 가도록 힘을 실어주는 창조주의 격려인 듯하다.

창조의 신비를 감지하는 묘미는 자전거를 탈 때 나의 몸에서도 나타난다. 힘차게 페달을 밟을 때 올라오는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의 묵직함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다. 달릴 때 얼굴을 스치는 신선한 바람은 마치 이 모든 자연과 사람을 만드신 분의 사랑의 터치처럼, 다정한 속삭임으로 다가온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함께 달리는 그 충만함은 물아일체(物我一체體)라고나 할까!


자전거의 세계로 들어온 후 나의 몸에는 또 다른 창조의 세계가 펼쳐졌다. 구릿빛으로 보기 좋게 그을린 얼굴과 팔다리는 자연과 내 몸이 이루어낸 작품이다. 아무리 선크림을 바르고, 썬패치를 붙이고, 안면가리개를 해도 얼굴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자연의 빛은 막을 수가 없다. 급기야는 자연이 내 몸에 만들어준 작품에 감탄하며 자랑스럽게 열어 보인다.

친환경적이라는 면에서 나의 자전거 타기는 매우 고무적이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후 운전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차를 처분하였고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되니 나에게서 자동차의 세계는 더욱 멀어져 갔고 그야말로 자전거의 세계가 도래하였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온 세계에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나라마다 탄소중립 정책을 논의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기 위해 핸드폰 맵으로 자전거 경로를 탐색하는 나를 보며, 본래 창조된 상태로 환경을 보전하려는 모습에 스스로 기특해한다. 내가 소속된 자전거 단체가 그저 즐기기만을 위한 동아리가 아닌 환경부 소속의 사단법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자전거를 통해 넓혀진 친구들은 시대를 초월하고 성별과 나이를 넘어선다. 톨스토이는 67세에 자전거를 배웠다고 한다. 그가 60세에 늦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안타깝게도 7살이 되어 죽게 되어 커다란 상실감에 빠졌는데 어느 날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여 삶의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가 친구처럼 느껴졌다. 만약 사람들에게 톨스토이가 내 자전거 친구라고 하면 하늘에서 듣는 이가 기분 나빠할까.

작가 김훈도 새롭게 자전거로 만났다. “풍륜”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며 뛰어난 필력으로 쓴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공감했다.

방탄 소년단의 RM(본명 김남준)도 자전거 친구다. 그가 “Bicycle”이라는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그 곡을 자꾸자꾸 들어보게 되고 텔레비전에 그의 얼굴이 보이면 괜히 설레며 손을 흔들어 준다. 이처럼 자전거는 내 인간관계의 창조로도 그 영향력을 넓혀간다.

자전거의 세계로 들어온 후 나는 건강과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물론 삶의 활기가 어느 때보다 넘쳐난다. 자전거 라이딩은 우리네 인생을 너무도 닮았다.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다가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을 쌩쌩 달리는 짜릿함, 지루하기도 한 평평한 직선 길이 다가오기도 하고 굽이 돌아가는 곡선의 아름다운 길도 나타나는 인생길의 축소판이라고 할까. 두 번의 암 수술에도 거뜬히 살아남아 덤으로 선물 받은 생명에 감사하며 오늘도 새롭게 펼쳐지는 인생길을 향하여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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