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쑥레몬타르트

죽을고개, 쑥고개

by 쏘피


4월의 동산에는 낮고 잔잔하게 쑥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내게 쑥은 향긋한 봄의 전령사가 아니다. 4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잠시 내려온 산골에서 겪었던 아찔한 사고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리기 전, 노을이 내려앉을락 말락 하던 분홍빛 어느 저녁이었다. 엄마는 찬거리로 생선찌개를 끓이고 있었고, 국물 맛을 본 나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엄마, 여기에 쑥갓만 넣으면 딱 좋겠는데?”


평소 생선탕에 쑥을 넣지 않던 엄마는 그냥 먹자며 만류했지만, 나는 완벽한 맛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 맛있게 먹어야지. 쑥 바로 앞에 많은데 뜯으러 같이 가자!”


결국 쑥을 뜯으러 가자며 귀찮은 엄마를 재촉했다.

앞동산은 쑥이 지천이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완벽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피곤함도 잊었다. 굳이 엄마와 함께 나선 건 길목을 지키는 커다란 진돗개 때문이었다. 아빠가 고라니를 쫓기 위해 멀찍이 묶어둔 그 개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가 아니었기에 낯설고 두려웠다. 개가 없었더라면 혼자라도 금새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기어코 쑥을 한 움큼 뜯고 돌아 나오는 길, 엄마는 나더러 먼저 건너가라고 했다. 개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밭을 껑충 뛰어 넘었다. 안도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내 두눈을 의심했다. 엄마가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 발치 아래는 낭떠러지 같은 구릉이 있었다.


“엄마! 빨리 나와!”


비명이 터졌다. 내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개가 뒤따라오던 엄마를 덮친 것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던질만한 것 또한 없었다. 개는 쓰러진 엄마를 놓아주지 않고 무섭게 물어뜯었다. 나의 절규에 정신을 차린 엄마는 필사적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 내 쪽으로 뛰쳐나왔다. 동산을 내려온 엄마의 엉덩이는 이미 피로 붉게 젖어 있었다. 하필 아빠는 집을 비웠고, 나는 운전대를 잡을 줄 몰랐다. 우리는 완성하지 못한 생선찌개를 뒤로한 채 응급실로 향했다.


병실로 향하는 우리는 차분했으나 참담했다. 엄마는 어떻게 물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놀라 아프지도 않다고 했다. 개의 송곳니가 박힌 자리에는 솜 뭉치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깊고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새끼손가락은 골절되었고, 며칠 동안 기저귀를 수차례 갈아야 할 정도로 지혈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쑥이 보이는 봄이 올 때마다 말씀하신다. 엉덩이가 아니라 목을 물렸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엄마는 사고 전부터 기이한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꿈으로 마음이 계속 캥겨 근심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타나 검게 그을린 얼굴로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고 했다. 예전에도 할머니가 꿈에 나와 ‘춥다’고 말씀 하셔서 묘소에 가보니 주위로 찬물이 흐르고 있었던 적이 있었기에, 엄마의 수심은 더 깊었을 것이다. 그 꿈이 당신이 다칠 징조였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개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었던 그 쑥고개. 만약 내가 혼자 갔더라면, 혹은 그날의 찌개가 생선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이후 엄마에게는 큰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나에게는 쑥에 대한 아찔한 기억이 남았다. 가족 중 유일하게 그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나만이 엄마와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이제 어린 쑥을 한 줌 뜯어다가 데치고 말려 고운 가루를 낸다. 그리고 눈이 질끈 감길 정도로 상큼한 레몬 즙으로 커드를 만들고, 그 위에 구름처럼 부드러운 이탈리안 머랭을 올린다. 쌉싸름한 쑥 향 위로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덮인다. 이것은 우리 모녀의 아픈 기억을 담아 구워낸 아찔한 맛이다.

인생에 설탕 한스푼을 더하면 조금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러니 이 단맛으로 쑥의 나쁜 기억을 중화시켜본다.




[곁들임 봄재료]

으름나무꽃, 푸룬자두나무꽃, 홍옥사과꽃, 왕호두나무새순


[메인 구성]

레몬커드, 쑥아몬드크림, 파트사블레, 레몬쑥마멀레이드, 이탈리안레몬머랭









소피의 감자와 화이트와인 - 봄 상편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따금 짤막한 단편글과 스페인 후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동안의 산골 일상은 인스타그램에서 친근하게 소식 나누겠습니다.


@_berrymore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