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석환 Jun 12. 2022

무대선 연기 뒤에선 연출…나? 일당백 연극인

경남배우열전 (3) 사천 극단 장자번덕 정으뜸 배우

욕을 먹었다. 무대에서도, 연습실에서도.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에게 선배들은 가혹하리만큼 욕을 해댔다. 친구 권유로 가입하게 된 김해분성여고 연극동아리와 김해 극단 이루마 청소년극회 '무대만들기'. 그곳에서 눈물 콧물 삼키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욕을 안 먹을 수 있을까….'


연기를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지났을 뿐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았지만, 연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선배들보다 잘하고 싶어서 '오기'로 버텨냈죠."

오기는 그를 키웠다.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무대에 섰다. 오기를 부리며 연습에 매진했다. 동년배 친구들이 학생 역할을 소화할 때 정으뜸(30) 배우는 자기보다 한참 나이 많은 배역을 맡아 연기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주제로 제작된 연극 <엄마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에서 '시장 상인3' 역할로 출연했고, 뒤이어 참여한 연극 <또랑>에서는 '할머니'를 연기했다.

극단 장자번덕 정으뜸(오른쪽) 배우가 할머니 분장을 하고 공연하고 있다. /정으뜸 배우


한때 정 배우 부모는 그가 연기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고교 시절 상을 받고 나서부터 부모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대회에 나갔다 하면 그는 연기상을 휩쓸었다. 제51회 밀양아리랑대축제 전국경연대회에서 최우수연기상(2008)을, 제58회 개천예술제에서 연기은상(2008)을 받았다. 제13회 경상남도청소년연극제 때는 우수연기상(2009)을 거머쥐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반대가 컸는데 대회에서 상을 받으니까 '얘가 재능이 있나 보다' 생각하셨던 것 같다"며 "나중에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단 말을 엄마에게 듣게 됐다"고 전했다. 예술대학을 나온 뒤로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친구 영향으로 고1 때부터 13년간 김해 극단 이루마에서 활동해온 정 배우는 현재 사천 장자번덕 소속이다. 끊임없이 '새 도전'을 하는 중이다.  매년 다작하며 상을 여럿 수상했다. 연극 <왕, 탈을 쓰다>에서 담이 역을 맡아 제38회 경남도연극제 우수연기상(2020)을 받았다. 귀 먹은 할멈 역으로 출연한 연극 <운수대통>으로는 제39회 경남도연극제 우수연기상(2021), 제39회 대한민국연극제 신인연기상(2021)을 차지했다. 그가 상을 받은 건 청소년기 이후 10여 년 만의 일이다.

정으뜸 배우.

그는 배우로 무대에 나서는 것뿐 아니라 작품 연출, 스태프로도 참여한다. 올해에만 17개 작품에 참여했다고 한다. 하루 17시간을 꼬박 연극에 쏟는다. 자나 깨나 작품 생각만 하면서 지낸다. 무대 위에서는 떨림을 숨긴 채 연기를 이어가고, 무대 뒤에서는 좋은 공연을 위해 스태프 역할을 자처한다.


정 배우는 "지역에서는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작품도 만들 줄 알아야 한다"며 "연기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어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새로운 것을 찾아 새 길을 만들기 위해 길을 헤집고 나가는 중"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객을 많이 만나지 못해 배우로서 회의감을 느껴왔다는 그는 요즘 "나를 찾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딱히 없다는 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연극 자체가 내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극을 해서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나를 잃지 않아야 무대 위에서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눈 감기 전까지 작품 생각만 하고 취미도 없이 연극만 하며 지내왔다. 당장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 나를 찾는 법을 고민하며 지낼 생각이다."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기 연습에 쉬는 시간은 없다 내 행복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