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있었다. 30년 전 통영시 해평마을 열녀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극단 벅수골 연극 <해평 들녘에 핀 꽃> 공연 날, 조미옥 박승규 두 배우가 공연 도중 머리를 부딪혔다. 조 배우 이마에서 피가 철철 났다. 조 배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붕대로 이마를 압박하고 무대에 올랐다. 동네 주민 역으로 출연한 이규성(47 한국연극협회 통영지부장) 배우는 분장실에서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다시 무대에 섰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마무리된 뒤 객석에서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1992년 12월 8일, 그의 나이 열아홉 때 일이었다. 장구를 쳐 사물놀이나 풍물놀이를 하는 게 꿈이었던 그는 이때 결심했다. '연극을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
통영 극단 벅수골 이규성 배우.
함께 울고 웃는 관객 보면 마음의 정화 얻고 설레기에 30년 운명처럼 무대에 서
눈길 주는 꿈마다 부모 반대에 부딪혀 곤경을 겪었지만,이 배우는 연극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거센 반대에도 고집스럽게 연극인의 길을 갔다. 제24회 경남연극제 우수연기상, 제30회 경남연극제 우수연기상, 2013년 대한민국 청년연극인상, 제36회 경남연극제 우수연기상, 2018 통영예술인상 창작상은 그렇게 완성됐다.
지난 10일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규성 배우는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칠 정도로 장구에 매달리던 때도 있었고,군대에 말뚝 박을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며 "과거 벅수골 대표님에게서 무언가를 목숨 걸면서 최선을다해본 적 있느냐,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라는말을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대표님 정신교육이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배우가 체질이다. 큰 무대에 서더라도 웬만해선 긴장하지 않는다. 그는 "관객과만날 때 설레는 건 있지만, 두려워서 긴장하는 건 없다"고 했다. <사랑 소리나다>,<통영 다시 그 자리에>,<통제영의 바람>, <쇠메소리>, <연못가의 향수>, <꽃잎>, <코발트블루> 등 그가 연극 100여 편에 출연할 수 있던 것은 바로 '설렘' 때문이다.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그의 성격과도 연극은 궁합이 잘 맞는다. 이 배우가 "연극은 내 운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무대 위에서는 "돈 내고 공연을 보러온 관객에게 어떻게 하면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공연 계획이 잡히면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기 위해 매일같이 연습실을 드나든다. 쉬는 날은 없다.일주일 내내 연습을 소화한다. 학교 연극동아리 지도 강사로도 활동 중이어서, 이 일정이 없거나 겹치지 않을 때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밤 10시까지 온종일 극단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쉬면서 할 법도 한데 연기 욕심이 커 연습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의 아내는 부담 없이 연습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연습이 고되어도 긍정적으로 상황을 넘기는 그다.
이 배우는 "연기를 해서 행복하다"며 "배우 직업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 당시 벅수골 대표님이, 연기를 하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금방 그만두게 될 거니까 반드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했었다"며 "지금 역시 온갖 거짓말을 갖다 붙여도 연극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분명한 건 이 일을 할 때 내가 행복하고 나를 통해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웃고 분노하고 감격하는 관객 덕에 마음의 정화가 된다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연기를 본 관객이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갈 때면 행복감을 맛본다는 그였다.
배우여서 행복하다는그는 앞으로 어떤 연극인으로 남고 싶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이렇게 답했다. "동생들이 한 번씩 나를 만나면 유쾌하다고 얘기한다. 관객들에게도 내가 유쾌한 배우로 기억되면 좋겠다. 어떤 연기를 하든 무대를 보고 돌아갈 때는 '아, 저 사람 유쾌한 사람이야', '유쾌하게 연기하는 사람이야 라고 기억되고 싶다. 언제까지 무대에 오르게 될지 모르지만, 계속 무대에 서서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