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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환 Jun 12. 2022

"연기하며 행복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경남배우열전 (1) 밀양 극단 메들리 이현주 배우

경남지역 연극판은 코로나가 몰아쳐도 어김없이 돌아갑니다. 무대에 올라 객석을 찾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배우들, 그들의 무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우리 동네 연극인들을 한 명씩 만나봅니다.


2021년 10월 19일 오후 4시 50분 밀양시 가곡동. 영화 <밀양> 촬영지로 유명한 카페를 지나 밀양강 방면으로 300m가량 걸었더니 '공간사랑'이라고 적힌 까만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연극협회 밀양지부'. 간판이 있는 맞은편 도로까지 다다르자 간판 맨 하단에 선명하게 적힌 작은 글자가 보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정면부 맨 좌측 계단에 다가섰더니 셔터가 절반가량 내려가 있었다. 또 다른 계단이 있는 길로 우회해 건물 주변을 서성이는데 현관문 주변에서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어? 잘 찾아오셨네요."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든 작업복 차림의 이현주(47) 배우였다.

이 건물 2층에 있는 극단 메들리 공연장으로 안내한 그는 까만 무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배우 이현주, 사람 이현주의 삶'을 들려줬다.


밀양 극단 메들리 이현주 배우. /극단 메들리


이 배우는 밀양연극협회 부지부장이자 극단 메들리 부대표다. 33살 때인 2007년 극단 메들리에 입단했다. 이후 메들리에서 줄곧 활동했고, 카메오 출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메들리 공연만을 고집했다. 지금까지 그는 작품 40여 편에 출연해 제29회 경상남도연극제 우수연기상(2011), 경남배우협회 올해의 배우상(2011), 제12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연출가전 여자연기상(2013), 한국연극협회 대한민국 젊은 연극인상(2018), 제35회 경상남도연극제 여자 우수연기상(2018), 제39회 경상남도연극제 연기대상(2021) 등을 수상했다.


15년 차 연극인인 그는 작품활동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연극뿐 아니라 지역 봉사, 강연 등을 병행해왔다. 오전에는 지역 봉사, 오후에는 연극 강연이나 작품 연기 연습을 한다. 지역에서 여러 직책을 맡아 일을 시작하고 나서 원래 정오에 하던 기상 시간을 2~3시간 앞당겼다. 오전부터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저는 '연극쟁이'지만 밀양문화재단 이사, 재단 연극 강사, 밀양시 도시재생 가곡동 문화팀장, 하남 주민자치위원회 간사, 밀양경찰서 청렴 동아리 위원, 밀양경찰서 보안협력위원을 맡아 업무를 보고 있어요. 아무 수당도 받지 않고 하는 일이에요. 메들리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이 저의 활동성을 보시고는 여러 제안을 해주시더라고요. 여기는 지역이 좁잖아요. 유대관계 조성을 위해 여러 직책을 맡아 관계를 잇다 보니 극단 관심 회원이 많이 늘었어요. 2주 전에 회원 명단을 정리해보니까 700명 정도 되더라고요. (웃음)"

연극이 실패 딛고 서게 해줘
경남연극제 대상 등 여럿 수상
지역 봉사 등 사회활동도 왕성
"남 도우며 작품 활동 계속"


하루를 오로지 작품에만 쏟지 않는데도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하나도 받기 어려운 상을 6개나 거머쥐었다. 경상남도연극제 우수연기상, 경상남도연극제 연기대상 등 굵직한 상이 여럿이다. 어느덧 중견 배우가 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상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아무 고민 없이 연극 <안녕 경자 씨>를 언급했다.

"올해 받은 경상남도연극제 연기대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연극 <안녕 경자 씨>에서 경자 역을 맡았어요. 메들리의 주축이었던 이정미 배우가 원래 경자 역을 맡기로 했었거든요. 그런데 4월 공연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난 거예요. 갑작스레 제가 이 역을 맡게 됐죠. 놀랄 정도로 이 작품이 좋은 호응을 얻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슴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잊히지 않는 작품이 돼버렸어요. 평소 존경하고 좋아했던 이정미 배우가 본인 대신 그 상을 제가 받게끔 해준 게 아닌가 싶어요. 언니 몫까지 메들리를 잘 이어나가라고 짐을 준 것 같기도 해요."

마주 앉은 기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 그리고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은 이 배우는 지금처럼 누군가를 도우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배우의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는 말도 웃음 지으며 꺼내놨다. 그러면서 포부도 덧붙였다.

"연기를 해서 행복했던 사람, 저런 배우처럼 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억된다면 좋겠어요. 사업 실패로 빚은 빚대로 늘어나서 삶의 낙이 없을 때 시작한 일이 연기인데, 이 일을 하고 나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어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열심히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도와드리고, 작업하고, 공연 잘 만들면서 메들리를 이끌어 나가고 싶어요."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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