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이론 – 민주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1. 8. 12. 오전 채널A 뉴스 라이브 전문가 간담회에 전직 검찰총장 자격으로 출연해 문재인 정부의 백신 도입 등 방역 대책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후단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단, “국민의 보호에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제다.
약 2년이 지난 2023. 7. 17.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집중호우로 50여 명의 국민이 죽거나 실종된 재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해외 순방 일정을 모두 마치고 늦게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을 변명하는 발언이었다.
강건너 물구경 하는 대통령
게다가 늦게 귀국한 윤 대통령은 산사태 피해지역인 경상북도 예천군 일대를 찾아 이재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해외에서 산사태 소식을 듣고 ‘그냥 주택 뒤에 있는 산들이 좀 무너져서 민가를 좀 덮친 모양’이다. 이렇게만 생각했지 몇백 톤짜리 바위가 산에 굴러 내려올 정도로 이런 건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봐서 얼마나 놀라셨겠나”라고 말했다. 해외에 체류하면서 국내 호우피해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는 자백이었다. 더욱이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피해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대통령을 꿈꾸던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19 팬데믹 대처를 비판하며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보호라고 외쳤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집중호우로 엄청난 재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끝끝내 해외 순방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뒤늦게 귀국해서는 “그냥 주택 뒤에 있는 산들이 좀 무너져서 민가를 좀 덮친 모양”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했다.
그 때와 지금의 윤석열... 너무나도 다르다
대통령이 되고 싶던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의 발언은 너무나도 모순되어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의심이 될 정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처럼 모순된, 특히 국민의 안전에 대해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직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하지만 견해에 따라서 윤 대통령의 행동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읽힐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수없이 다양하다. 다양 한 정의 중에는 비교적 다수의 지지를 얻는 이론들도 있지만, 정답이라고 인정되는 하나의 이론은 없다. 이들 이론 중에는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정부’가 아닌 ‘인민에 의해 승인된 정부’로 바라보는 정의도 있다. 슘페터나 다운스와 같이 민주주의를 경제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이들의 입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 엘리트들이 벌이는 경쟁의 장이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경쟁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호를 얻기 위한 생산자들의 경쟁과 본질에서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기에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돈을 지급하고 상품을 구매하듯 정치영역에서 유권자들은 표를 주고 정책을 구매한다.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팔려야 하는 상품이다
유권자의 표를 얻어야 하는 대통령 지망생 윤석열은 그들이 기꺼이 한 표를 지급할 수 있는 상품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 19 팬데믹 앞에서 “독감 정도 유행병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심각하네요”라고 말했다가는 결코 유권자의 표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다”처럼 그럴싸한 포장을 씌어야 유권자들은 기꺼이 한 표를 준다. 그렇기에 정책으로 유권자의 표를 사야 하는 대통령 지망생 윤석열의 입에서 “정부의 존재는 국민의 보호다”와 같은 명언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며 경쟁자인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도 잊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한 다운스는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국민에게는 언제나 정치적 판단을 위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위해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권자로서의 한 표를 행사한다면, 그 한 표는 너무나도 비싼 상품이다. 그렇기에 유권자 중 비싼 값을 지급하고 한 표를 행사하려는 이는 없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정치인들은 더욱 수월하게 자신의 표를 행사하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이용해야 한다. 자신은 비싼 물건으로 포장하고 상대는 싸구려로 헐뜯어야 한다. 자신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값비싼 물건으로 포장하고, 동시에 상대방은 국민의 보호에 실패한 존재 이유가 없는 정부, 즉 싸구려 물건으로 깎아내리면 유권자들은 그에게 비싼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나를 포장하고 상대를 깍아내야 표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는 대통령 지망생 윤석열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매우 세련된 발언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비싸게 포장하고 상대를 싸구려로 깎아내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더는 유권자의 표를 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바꿀 수 없다”라며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존재가 국민의 보호와 관련 없다고 해석될 발언을 하고, 산사태 이주민을 찾아 “그냥 주택 뒤에 있는 산들이 좀 무너져서 민가를 좀 덮친 모양”이라며 방관자적 태도를 보여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이미 유권자의 표를 샀고 심지어 그것은 환불조차 되지 않는다.
비싼 값을 주고 표를 산 마당에 그 비싼 값을 계속 지급하는 것은 합리적 행동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과 대통령 지망생 윤석열의 말과 태도가 이처럼 모순된 이유다. 겉으로는 모순될 수 있겠지만,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욕망과 그것을 얻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의 측면에서 본다면 전혀 모순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일관된 태도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경제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이론에 따르면 국민 또한 합리적 행동을 하는 주체다. 유권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모순된 태도를 보고 자신들이 불량상품을 샀다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2023년 7월 집중호우 사건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를 증명할 것이다.
과연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가 최종 결과에서도 합리적이었다 평가받을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