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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산 Nov 01. 2021

“평화”를 모르는 평화유지군

“평화”를 모르는 평화유지군  ⑦

 부대이동으로 오쿠시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다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요르단 부대가 남기고 간 시설물들이 있었지만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물이었다. 수도관조차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부대이동 초기 한동안은 개인별로 보급되는 PET 2-3병의 생수로 각자 그날그날 먹고 마시고 씻는 것을 모두 해결해야 했다.


 부대이동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니 어느새 남은 파병 기간은 3개월도 되지 않았다.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난생처음 경험하는 동티모르라는 낯선 땅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었다.


 상록수부대에는 매주 관할 지역의 마을을 돌아가며 주민들에게 의료지원과 구호품을 전달하는 블루 앤젤(Blue Angel) 작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인사과 소속이었기 때문에 부대 밖을 나가 현지 주민들을 만나 직접 도움을 줄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경험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다음부터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가 없으면 과장님께 미리 허락을 받아 블루엔젤 작전에 참여하곤 했다.


 군용 트럭을 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의 수풀을 지나 찾아간 마을엔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덥고 습한 날씨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지만, 준비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인형들을 나눠 줄 때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즐거웠다. 그러는 동안 한편에서는 군의관님과 의무대 병사들이 주민들을 진료해주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아이들의 머리를 이발해주기도 했다.



 처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변변치 않은 옷차림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어쩌면 이곳 사람들은 지금 그대로의 삶 속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가난하기에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발견하며 내가 생각해왔던 행복이란 게 뭘까 싶었다.    


 블루엔젤 작전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 일직 근무를 서는 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가 태어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수 없는데, 자기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태어난 나라에 따라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만약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난 오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도 마을 사람들처럼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곳에 "평화유지군"으로 와있는데, 평화가 뭐지? 평화가 뭔지 알아야지, 그걸 유지하던 말던 할 텐데 도대체 평화란 뭘까? 전쟁만 없다면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

 

 파병 마지막 1-2달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은 “평화”였다. “평화”를 모르는 평화유지군이라니… 동티모르가 동쪽인지 서쪽인지 구분도 못하던 파병 전 나의 모습이나 지금 나의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부대 안에 있는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유지군 부대 안에 평화에 대한 책은 없었다.


 속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을 때, 선임과 한밤 중 경계근무를 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과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선임은 자신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임은 입대 전 일본의 피스보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했다. 피스보트는 약 100일 동안 큰 배를 타고 전 세계 분쟁지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인데, 피스보트의 지구대학교(Global University)에 참가하면 전문가들의 강의를 듣고, 직접 분쟁지역을 방문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평화에 대해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 말고도 얻을 수 있는 게 많을 거라고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피스보트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동티모르 파병이 군생활의 끝이 아니었다. 파병 기간이 끝나면 강원도 인제 원통의 자대로 돌아가 보내야 할 군생활이 1년도 넘게 남아있었다. 머릿속은 이미 피스보트에 올라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부대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나의 선택은 파병기간 연장이었다. 상록수부대는 1999년 10월 제1진 파병을 시작으로 2003년 10월 제8진이 철수할 때까지 6개월마다 부대가 교체되었다. 나는 상록수부대 제5진으로 2001년 10월부터 2002년 4월까지 근무했는데, 파병 복귀 한 달을 앞두고는 파병 연장 희망자를 조사했다. 운 좋게도 나를 포함해 총 4명의 연장 후보자가 육군 본부의 최종 심사에 올라갔다. 억세게 운 좋은 나의 군생활에 또 한 번의 행운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꾼 동티모르에서의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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