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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몽당연필 Oct 27. 2023

겁을 먹어서 살이 쪘나 봅니다

베트남에서 얻어 걸린 깨달음

 

 베트남 하노이.

 20년 전, 엄마와 함께 떠난 패키지여행 이후 하노이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에는 출장 차 베트남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만나 주말 관광을 하기로 했다.


 출국 당일.

 초1 아들의 오동통한 손을 잡고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비행기표를 발권하고, 출국 수속을 밟는다. 비행기를 타려면 한 시간 이상 남았는데 이미 녹초가 되었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러 나오기 직전에 집에서 설사를 질펀하게 한 아이가 버스 안에서 또 배가 아프다고 할까 봐, 예상외로 길이 많이 막혀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1 터미널과 2 터미널을 착각해서 잘못 내릴까 봐, 네 시간이 넘는 비행을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민폐를 끼칠까 봐 등 걱정거리가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한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려서 비상약으로 챙긴 타이레놀을 얼른 삼켰다.


 그러나 관자놀이를 짓눌렀던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버스에서 내내 꿀잠을 잤고, 버스는 예외 없이 제시간에 우리를 제2터미널에 내려주었으며, 아이는 비행기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애니메이션 두세 편을 보며 낄낄거렸다.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자, 벌써 도착했냐며 아쉬워할 정도로 아이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해서 남편이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그제야 나는 안도했고, 약 9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피로가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폭신한 침구에 기진맥진한 몸을 파묻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대체 어쩌다가 각종 걱정을 짊어지는 '걱정 인형'이 되고 만 것인가.'


 '30일간 배낭을 짊어지고 유럽 7개국을 누비던 스물세 살의 나는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인가.'




 다음 날 아침, 회사로 출근한 남편을 뒤로하고 아들과 둘이 호텔을 둘러싼 호숫가를 산책했다.

 아이를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가 엄마도 하나 찍어 달라면서 아이에게 카메라를 맡겼다. 아이는 카메라를 가로로 눕혔다가 세로로 세웠다가 하면서 몇 컷을 신중하게 찍었다. 카메라를 건네받아 원본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젯밤 잠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20년 전의 내가 아니었다.


 광대에 늘 걸치고 다닌 간 생기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기미와 근심이 잔뜩 내려앉은 여인.


 체형에서 제일 자신 있었던 잘록했던 허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앞, 뒤, 옆 사면의 너비가 모두 같아져 버린 40대 아줌마.

 

 기미, 주근깨, 내장지방은 이제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하면서 사진을 최대치로 확대해 보았다.


 기대와 호기심으로 일렁이던 눈빛 대신 의심과 불안으로 떠는 눈빛을 갖게 된 낯선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나는 비로소 확신했다.


 '20년 동안 야금야금 집어 먹던 겁이 내 뱃살을 부풀리고 내게서 열정을 빼앗아간 원흉이로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매끈한 피부보다, 잘록한 허리보다 먼저 되찾고 싶은 건 겁 없이 내달리던 20대의 열정과 호기심으로 빛나던 눈빛이라는 걸.


 두둑한 뱃살보다 먼저 갖다 버리고 싶은 건 오지 않은 미래에 온갖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덧입혀 겁부터 욱여넣는 과식 습관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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