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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brant Oct 15. 2021

장인어른과의 술자리

 아빠가 어제 술 마시고 와서 또 용돈 줬어!


 술을 마시지 않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친구네 아빠는 술을 드시고 올 때마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용돈을 주시는 걸까? 부럽다...


 용돈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내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나는 술을 좋아하시는 장인어른을 만나게 되었다. (아직 용돈을 받을 적은 없다ㅋㅋㅋ) 코로나 19 때문에 요즘은 자제하며 지내시는 것 같지만, 전에는 일주일에 4-5일은 술자리에 나가시는 편이었다.


 물론, 나 역시 아빠처럼 술을 잘 못 마시기는 하지만, 장인어른과의 술자리는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다. 결혼 직전에 장인어른과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장모님이 술도 잘 못 마시는 사위까지 술꾼으로 만들 거냐고 뭐라고 하셨었다. 그 후 약 2년 만에 도봉산 아래에 있는 장인어른의 단골집에서 두 번째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등산도 좋아하시는 장인어른의 도봉산 단골집


 장인어른과 술자리를 갖고 싶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장인어른의 성격 때문이다. 장인어른은 평소에 말이 없는 편이시다. 처갓집에 가도 장인어른께서는 보통 방에서 혼자 TV를 보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식사할 때가 아니면 거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다. 그런데, 술을 드시면 한 번씩 연락을 하신다. 딸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기도 하시고, 술 취한 상태로 전화하셔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한다.


 두 번째는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어려서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여름이면 가족들과 휴가를 가고, 가끔은 해외여행도 가며 자랐던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가 부럽다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기에 장인어른은 회사일로 주말까지 바쁘신 경우가 많았단다. 장인 장모님 모두 은퇴하신 이제부터라도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기회가 될 때는 같이 식사나 술자리도 가지면서 친해질 기회가 많아지면, 코로나 이후에는 아내의 바람대로 같이 여행도 가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에 가족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데서 오는 아내의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으면 좋겠다.


 세 번째도 아내 때문이다. 아내는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한 후에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부쩍 이해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는 결혼식날 눈물을 흘릴 것 같다는 장인어른의 말을 듣고, "아빠가 왜 눈물을 흘려?"라는 말을 했다. 표현을 하지 않으니, 아버지가 딸에게 갖는 마음이 딸에게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장인어른 생각을 많이 한다. TV를 보다가도 장인어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좋은 데에 갔다 오면 아빠랑도 함께 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네 번째는 처갓집에서 내게 너무 잘해주시기 때문이다. 처갓집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X서방, 이거 먹을래?"이다. 처갓집과 달리, 우리 집에서는 간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식사를 잘 챙겨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처갓집은 문화가 다르다. 간식을 먹고,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야식도 먹는다. 이게 보통이다. 어쩌면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계속해서 무언가 먹을 것을 권해주시니, 항상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때로는, 황송할 정도이다. 그래서, 나도 처가 식구들에게 잘해드리고 싶다.


  낮술은 1차 곱창집에서, 2차 호프집으로 이어졌다. 장인어른과 삼촌(장인어른의 동생)의 20대, 30대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던 힘든 상황. 나이 어린 동생을 챙겨주셨던 주위 어른들에 대한 고마움. 지금이라도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 싶은 심정. 이런 이야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분이 좋으셨던 걸까? 생각보다 일찍 술에 취하셔서 조금 놀랐다. 얼른 집에 모셔다 드리려고 택시를 불렀는데, 한사코 지하철을 타고 가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와 아내도 같이 지하철을 탔다.


 집 근처 역에 도착할 때쯤, 우리를 자리에 앉히시고는 알아서 갈 테니 걱정 말라며 먼저 내리셨다. 걱정이 돼서 따라 내렸다. 그런데, 술이 많이 취하셨는지, 우리가 같이 내린걸 전혀 모르셨다. 엘리베이터를 타시길래 따라 탔는데, 그 안에서도 우리가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다.


 밖으로 나가면, 얼른 택시를 태워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바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시고는,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글씨를 크게 해 놓으셔서 내용이 어깨너머로 보였는데, 딸에게 잘 들어갔냐는 문자를 적고 계셨다.


 딸이랑 헤어진 지 5분도 안되었는데, 벌써 둘째 딸 생각이 나시나 보다. 다른 때에도, 이렇게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서 문자를 보내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장인어른이 보낸 문자가 5m 뒤에 있던 딸에게 도착했고, 장인어른은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하셨다. 나는 얼른 큰길로 뛰어가 택시를 잡았다.


 처갓집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태워드리고, 장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으로 오늘의 술자리는 끝났다. 들은 얘기들 보다, 장인어른의 뒷모습을 보며 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하루였다.


 장인어른의 두 번째 단골집에서 조만간 다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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