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첫눈이었던 함박눈을 가까이 느껴보려고 창문을 열었다. 눈 내리는 풍경에 시선을 집중했던 것도 잠시, 아래쪽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경비아저씨들이 눈 치우는 기계로 서둘러 눈을 치우시는 소리였다. 하지만, 분주한 경비아저씨들보다 더 빠르게 첫눈이 내리는 아파트 언덕으로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동네 아이들이었다.
나도 작년에 처음 알았는데, 114동 앞 언덕은 겨울철 동네 아이들의 눈썰매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처음 이사를 왔던 재작년에는 큰 눈이 내리지 않아서였는지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몰랐다. 그런데, 작년에는 처음 보는 그 광경에 정말 충격을 받았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아이들 모두가 눈썰매장에서 빌려주는 플라스틱 눈썰매를 가지고 모여들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돈 받고 썰매를 빌려주는 아저씨가 눈이 내리니까 찾아오신 걸까? 아니면 관리사무소 같은 곳에 대여 가능한 썰매가 마련되어 있나? 너무 궁금해서 맘 카페에 가입되어 있는 아내에게 부탁해서 질문을 올렸다. "도대체 어떻게 동네 아이들 모두 눈썰매를 가지고 있나요?"라는 아내의 질문에 동네 주민분들이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다. "눈 오는 날 썰매를 타고 놀기 알맞은 언덕이다 보니, 아이들 있는 집은 눈썰매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다수였다. 아직 썰매 탈 아이가 있는 집은 아니다 보니 내가 뭘 몰랐던 모양이다. 그 후,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있는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보니, 썰매를 가지고 있는 집도 꽤 있어 한 번 더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무튼, 썰매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자, 내려가서 직접 현장을 보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 함성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의아하게도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 목소리도 많이 들렸다. 몇 걸음 더 걸어 동 입구 유리문 앞에 도달했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진을 찍어주고 계시기도 했고, 힘차게 썰매를 밀어주고 계시기도 했다. 아이들만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부모님들 얼굴 역시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임을 마스크 윗부분만을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밤에 또 눈이 내려서 다시 한번 내려와 봤다. 아까는 미처 못 봤는데, 경사가 상대적으로 덜한 반대쪽 언덕도 나이가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썰매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속도가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붐비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였을까? 아내는 갑자기 모르는 아이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이모도 한 번 타볼 수 있을까?" 놀라는 눈의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늘 있던 일이라는 듯 흔쾌히 썰매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꼬마가 속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조언도 해주었다. 덕분에 겁쟁이 아내도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스피드를 즐기며 썰매를 탈 수 있었다.
보기만 했던 나와는 달리, 직접 썰매를 타 본 아내는 내게 한마디 했다. "1단지 썰매장에서 아직 썰매 안 타봤어? 우리 동네 사람도 아니네!" 아내를 웃게 해 준 꼬마들 덕분에, (이사 온 2년 내내 코로나와 함께였어서) 아직도 낯선 이 동네가 조금 더 친근하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작년 겨울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 동네 꼬마들을 전부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실에서 만나는 6학년 우리 반 아이들보다도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해 동안 마스크 쓰고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전부 다 날리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만나서 신나는 얼굴을 전부 다 볼 수 있게 된다면 더 좋고. 얘들아, 내년에 함박눈 내리면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