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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brant May 13. 2022

스승의 날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다.

 해마다 스승의 날 즈음이면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시간을 준다. 5학년 때까지 선생님 중 한 분께 편지를 쓰라고 하면, 아이들 대부분은 큰 고민 없이 금방 선생님 한 분을 떠올린다. 아마 아이들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선생님 한 분은 모두 있기 때문이겠지? 처음에는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금세 진지하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 정성스레 꾸민 편지 봉투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다.

5학년 선생님께 편지를 쓴 우리 반 녀석, '치맥'이 궁금한가 보다ㅋㅋ 어린 시절의 나 같은 장나꾸러기 녀석의 편지답다.

 아이들이 편지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생각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바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셨던 강OO 선생님이다. 그 시절 나는 장난을 많이 쳤고 친구들하고 떠들다가 졸업식날까지도 혼이 났었는데, 왜 나를 칭찬해주시고 예뻐해 주셨던 다른 선생님들보다 그 선생님이 먼저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 스승의 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연락을 드리지도 못했는데, 이상하게 그 선생님이 생각이 많이 난다. 아마 교사가 된 이후로 줄곧 6학년 담임만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들어 그 선생님이 더 많이 생각나는지도 모르겠다. 


 운명론을 믿지는 않지만, 까불이 시절의 업보(?)때문에 계속 6학년 담임을 하면서 6학년 때의 나와 같은 까불이들과 만나 6학년을 함께 보내며 어린 시절의 속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사실 내 선택으로 계속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것이기에, 그 모든 것을 운명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6학년 담임이 인기 있는 자리는 아니기에, 해마다 그 자리는 비어 있을 때가 많아서 지원하면 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6학년 때 선생님처럼 내가 만날 학생들에게도 애정을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에 반복해서 6학년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선생님이 내게 특별했던 점은 2가지였다. 첫째는 '박사'게임이었다. 선생님은 매일매일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조사를 해서 발표하는 학생들에게 '박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핫도그에 대해서 조사해 온 학생은 '핫도그 박사', 100M 달리기 신기록에 대해서 조사해 온 학생은 '달리기 박사'로 불러주셨다. 주제는 제한이 없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무엇이든 조사해서 발표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박사'라는 별명이 멋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마치 '척척박사'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아무튼 박사라는 별명을 얻기 위해, 내가 관심 있어하던 모든 것을 조사해 노트에 적어 제출했다. 학기말에는 친구들 사이에 경쟁이 심해져서 한 가지 내용에 대해 노트 10장 이상을 적어 오는 경우도 있었다. 글씨를 쓰느라 손이 아픈데도 참고 더 많은 분량을 적어 가장 자세하게 조사해 온 박사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매일 저녁 늦게까지 무언가를 찾아보고 연필로 글씨를 쓰느라 바빴다. 


 칭찬이 듣고 싶어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는 무언가 관심 있는 내용을 책이나 신문, 아니면 백과사전 등에서 찾아보고 정리하는데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내용은 어디에서 찾아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장난꾸러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졸업식날까지 혼났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루아침에 완전 모범생이 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나마 이 정도의 변화가 있었던 것,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또 더욱 성숙해진(?)것도 이제 와서 보면 6학년 때 선생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선생님이 특별했던 또 한 가지는 인내심이다.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혼날만했고 잔소리를 하실만했다는 것은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혈기왕성했던 장난꾸러기 시절이었는데, 참고 또 참았다가 정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에도 한 번 더 참았다가 꾸중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특별함을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 올해도 6학년에 지원했다. 마음으로는 선생님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아이들의 작은 성취에도 아낌없는 칭찬으로 자신감을 듬뿍 키워주고 싶은데, 생각처럼 행동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을 보면서 선생님처럼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올해도 느끼고 있다.


 사실, 선생님은 아마 모르실 거다. 내가 늦은 나이에 진로를 변경해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또 선생님의 특별함 때문에 올해도 6학년을 맡아 내가 받은 사랑을 또 다른 아이들에게 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언제쯤 용기 내어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불쑥 연락을 드린다는 게 참 쑥스럽다고 해야 할까... 


 우선 멀리서나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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