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뜨거운 여름
여름휴가
여름이 오면 가족이 모인다. 매년 언니오빠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간다. 어떤 하나의 시작에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특히 매년 돌아오는 여름휴가에는. 거창한 의미 없이 시작한 여름휴가는 우리 가족에게 애틋한 추억이 되었다. 무엇으로도 형용하기 어려울 단단한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기릴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남긴 가족사진,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 할머니의 웃음. 그때는 당연한 존재였던 할머니의 부재를 통해 지난 기억을 되짚으며 가만히 읊조리게 된다. ‘감사합니다’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매년 여름휴가를 간다.
할머니의 기일
봄의 끝자락, 여름의 시작에는 할머니의 기일이 있다. 침을 삼키며 눈물을 참아내지만 차오르는 눈물은 어쩔 도리가 없다. 두 번째 기일에는 시간이란 약으로 많이 아물었는지 알았던 감정이 쏟아져 내렸다. 빗속을 운전하며 아무 말 없이 오른손으로 나의 왼손에 온기를 나눠주던 명휘.
재작년 여름, 할머니의 간병을 도맡아 할 때 맑은 하늘을 보며 야속함을 느꼈다. 서운했다. 서러웠다. 하루하루 할머니의 호전을 간절히 기도하며 보내는 나의 뜨거운 여름에 맑은 하늘은 참 버겁게도 느껴졌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면 눈물을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 안이 온통 눈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그렇게 끝이 날까 무서웠던 봄이 지나고 여름의 시작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으셨나 보다. 다행히도 할머니를 할아버지 곁으로 보내드린 날까지 하늘이 맑았고 공기는 따스했다. 마치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처럼. 그리고 다음 날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감정을 억누르며 눈물을 흘리던 내게 “아라야 참지 마”라고 이야기해 주던 언니의 목소리와 함께 눈이 뜬 그 자리에서 같이 펑펑 울었다.
아마도 나는 훗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또 그 아이의 할머니가 되어 더욱 짙은 그리움으로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겠지.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이 잊히기까지 그 시간의 3배가 걸린다는 글을 본 적 있다. 29년 동안 받은 사랑을 잊기에 이번 생은 너무나도 짧다. 잊지 못하고 잊지 못해서 다시 할머니를 만나는 그날 나는 수십 년간 느꼈던 감정을 설명해주고 싶다. 나에게 주었던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안온하고 대단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