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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님 Jun 04. 2023

이번 주말엔 숨만 쉬어야지

근데 크게 쉴 거임

저번 주말에는 부모님이 오셨다. 어떻게 보니 되게 자주 오시는 것 같은데 그 정돈 아니고, 연휴가 끼여서 3일이었는데 내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오신 거였다.


저번 주말 일을 쓰지 않았으니 여기에 같이 써보자면 벌써 휘발되어 부모님이 가시고 난 뒤의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글을 쓰는 건데 그마저도 미루다니.


아무튼 연휴에 본가에도 가지 않고 부모님을 오시게 한 불속성 효녀는 효녀 노릇을 하러 나갔다. 저번엔 수목원을 좋아하셨으니 이번에도 자연이 탁 트인 공간을 찾고 싶었다.

금요일 8시 도착이라는 연락에 퇴근 후에도 7시까지 공부를 하고 들어갔더니 온몸이 피곤에 쩌들었지만 나 좋자고 나보고온 부모님을 좁은 집에 계속 계시도록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그냥 너 얼굴 보러 온 거니 부담 가지지 말라곤 했지만, 기왕 오신 거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걸 보면 좋으니까.


나 혼자서는 절대 가지 않을 관광지를 골라 출발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아직은 비가 오지 않았고, 저번 주는 전국에 엄청난 비가 온다고 엄청 겁을 줬던 주말이었다.


자연경관이라 함은 적어도 날씨가 70%는 먹고 가는 건데...

날씨도 흐리고 크게 볼 게 없을 것이라고 낙담한 나는 가는 내내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한 변명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 예쁜 곳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다.'라던지 '볼 게 없어도 드라이브 겸 다녀오자.'며 계속 밑밥을 깔았던 것이다.  부모님은 딸이랑 어딜 가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나를 안심시켰지만 아무도 부과하지 않은 부담감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날씨와 관계없이 그곳은 너무 좋은 곳이었다. 아니 화창했다면 한참 앉아서 구경하고 싶은 곳이었지만 흐린 날에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탁 트인 호수라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구나.


좋은 자리에서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구경한 호수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짧은 코스를 두 시간 가까이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먹은 브런치는 매우 불만족이었지만 오늘의 메인코스에 대해 떠들다 보니 금세 불쾌감도 희미해졌다.


그러고 나서는 아빠가 조금 피곤해하셔서 집에서 쉬시다 가게 하고 싶었지만 신발을 사드리고 싶어서 백화점으로 갔다. 5년 전에 선물해 드린 유니크한 디자인의 커플운동화를 아직도 아끼며 신고 계셨기 때문에 새 신발을 사드리고 싶었다.

사드린지가 언젠데 엄마아빠는 아직도 그 얘길 하신다. 어차피 기성복인데도 네가 사준 신발만큼 특이하고 예쁜 게 없다며.


이번엔 썩 특출 나게 새로운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디자인은 엄마 마음에, 편함의 정도는 아빠마음에 쏙 드는 신발을 찾아냈다. 아빠는 발이 아주 편한 신발이 아니면 잘 신지 못해서 꼭 신어보고 사야 하지만 정말 쇼핑을 싫어해서 엄마가 늘 짜증 내곤 하는데, 딸이 사주겠다고 데려간 쇼핑에서는 아주아주 협조적이었다.


저번에 샀던 운동화 모델이 있던 브랜드를 갔다가 썩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두 번째로 간 곳에서 흰색 바탕에 기본은 천이라 가볍고, 앞 코는 가죽으로 되어 잘 더러워지지 않을 신발을 찾았다. 가격은 신경 쓰지 말고 발에 편한 걸 고르라고 그렇게나 강조를 했는데도 부모님은 자꾸 가격표를 보셨다.

결국은 적당한 가격에 마음에 드는 걸 찾았으니 망정이지만 나는 더 비싼 것에 눈이 갔다.


아무튼 만족스러운 쇼핑이었고 저녁으로 먹은 라멘도 진짜 맛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한식 파지만 나와 아빠는 비한식 파라 아빠입에 매우 잘 맞았다.


그렇게 관광, 쇼핑, 식사를 모두 끝내고 집으로 가실 때 이번엔 울지 않으셨지만 또 한참 차 앞에서 나를 끌어안고 놓질 못하셨다.


다음날의 나는 하루종일 너무 피곤해서 기절상태였고, 월요일까지 쉬었는데도 너무 피곤해서 화요일에 기어서 출근했다.




다음으로 이번 주말.


저번 주에 자식 노릇도 했으니 이번엔 꼼짝 않고 숨만 쉬고 싶었다. 내가 숨 엄청 크게 쉬면서 쉴 거랬더니 친구가 깔깔거리다가 자기도 숨만 쉴 건데 작게 쉬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원래는 숨 작게 쉴 친구를 만나려고 했지만 친구나 나나 계속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주는 둘 다 숨만 쉬고 다음 주에 보기로 했다.


금요일에 운동화 두 켤레를 세탁소에 맡기고, 밀린 빨래도 돌렸다. 옛날엔 운동화 세탁이 한 켤레에 3000원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선 두 켤레에 만원을 달라고 했다. 물가가 미친것 같았다. 하지만 집안일의 일부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므로 맡겼다.


그러고 나서 저녁에 커피를 마시며 제목은 기억도 안나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3편 정도 연달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당연히 피곤했고, 10시-11시 사이에 일어나서 가볍게 씻고 출근을 했다.


? 싶겠지만 아무도 없는 주말에 출근하면 이점이 많다. 그 넓은 공간을 혼자 다쓸 수 있고, 냉방과 전기, 인터넷, 커피 등이 무료이다. 굳.

요즘같이 공간을 쓰려면 비용이 필수적인 시대에 월급을 받으면서 공간까지 편할 대로 쓸 수 있는 곳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일을 하려고 간 건 아니지만 가벼운 서류 하나를 마무리해서 결재란에 올려두고, 인강을 들었다. 집에선 집중하기 쉽지 않고, 마음에 안정을 주는 단골카페도 아직 찾지 못했으며 스터디카페도 별로였기 때문에 이번 주말엔 출근해서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내내 집중한건 아니지만 한 챕터를 끝내서 매우 뿌듯했다.


그러고 나서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김을 사 와서 점심을 먹고(다시 한번 물가상승을 체감했다) 코인노래방에 갔다. 낮이라 사람이 없었고, 1시간에 8천 원= 16곡에 8천 원이었고 카드로 계산했는데 그럼 더 이상 코인노래방이 아니지 않나 싶었다. 여기서도 물가 상승을 체험하며 실컷 소리를 지르고 근처에 서점을 방문했다가 주말엔 열지 않았음을 깨닫고 집으로 왔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또 아무 로코를 틀고 보다가 아무래도 서점에 다녀오지 못한 게 걸려서 교보문고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때 시각이 저녁 8시 50분이었고, 서점은 10시에 문을 닫았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후다닥 10분 만에 준비하고 나가서 7분 거리의 버정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을 달려 도착했을 땐 9시 30분 정도였다. 원하던 책을 찾았지만 좀 더 구경해야지 싶었는데 별로 읽고 싶은 게 없었다. 베셀은 이미 읽었거나 한 번씩 들어보고 흥미를 끌지 않은 것이었고, 메인으로 올려놓은 책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 봐도 요즘 인기책의 유통기한은 매우 짧지만 메인칸에 올려둘 만한 책은 또 거기서 거기이다. 한두 권씩 교체하며 조금씩 밀려가다가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온라인서점을 조금만 들락거리는 사람이라면 실제서점에 가서도 별로 새로운 게 없다.


이번에 구매한 책은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스스로가 성인 ADHD라고 늘 생각하고 있는(그렇지만 병원을 쉽게 가지 못하는) 주의력, 집중력, 실행력에 관심이 많은 내가 관심 가질만한 책이었다.


늘 내 의지력과 실천력 거기다 집중력은 유치원 수준이 다를 외치며, 유치원생에게 수험생활을 시키는 기분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주의 산만함이 답답했던 차였다. 작년에 1차를 붙은 게 기적일만큼 공부량은 적었고, 개운할 만큼 공부한 기억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내내 그게 걸렸다. 그래도 이번엔 직장이라는 변명거리라도 있으니 좀 위안이 된다.


아무튼 책을 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사실 여기서 혼자 8시 이후로 바깥에 있었던 적이 손에 꼽았기 때문에 뭔가 어두운 길이 낯설었다. 해가 길어진 때라서 더 그랬다.


돌아와서 역시나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고 일요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숨만 쉰다는 목표를 달성하니 참 뿌듯하다.


일요일은 11시에 기상하여 씻고 청소기를 가볍게 돌린 뒤 다시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좋은 영화를 틀었다.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드문드문 영화를 2편 연달아 보다가 누워서 책을 펼쳤는데 깜빡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나니 이 시간이었다.


아, 한참을 고민하던 여름이불도 구매했다. 꽤 거금이 나갔지만 이번에 산 이불패드가 매우 짱짱할 것 같아서 기대된다. 새 이불이 오면 다음 주엔 모든 이불을 세탁해야지.


이제 글도 썼으니 디카페인 커피 내려서 책읽다 양치하고 자야지.

저번 주도 이번주도 참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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