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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Oct 04. 2023

"나를 좀 봐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가족을 위로한다"를 읽고

                                                       

  잊을라치면 간간이 날아드는 브런치의 알림이 잠든 영혼을 깨우는 듯하다. 그럼에도 모른 척 일상의 계획 속으로 초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느슨하게 풀어진 후의 조임이 힘겨워서다. 또한 그럼에도 완전히 잊히고 싶지 않은 욕망이 내 무의식 창고에 저장되어 있음을 앎으로 불현듯 브런치에 마음을 묶는다. 바닥에 달라붙은 젖은 낙엽의 힘으로라도 마음끈을 풀어헤치고 싶도록 이 밤이 도우고 있어 감사하다.



 오래전에 읽다 만 먼지 쌓인 책에 손이 먼저 간다. 나의 무의식 어디쯤에 아직도 가족이란 개념이 미성숙한 채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이유에서다. 얇은 습자지처럼 쌓인 먼저를 한 장으로 걷어낼 수 있을 정도의 긴 시간 속에 버려두었지만, 시선이 닿는 곳에 곧게 버티고 앉은 한 권의 책은 "가족을 위로한다"이다. 무심히 주고받는 상처로 결속된 관계가 가족이다. 배려 없이 휘두르는 날에 가장 많이 베이는 것이 가족이라는 걸 모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족을 위로한다’는 가족치료의 창시자로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칼 휘태커와 그의 제자인 미국의 가족 심리 치료사 오거스터스 네이피어가 공동으로 가족치료에 참여하여 쓴 책이다.  데이비드 브라이스와 캐럴린 부부, 딸 클라우디아와 로라, 그리고 아들 돈으로 구성된 5인의 핵가족을 통하여 가족의 일반적인 문제의 발견에서 치유되는 과정까지 일상의 사례를 통해 리얼하게 소개되고 있다. 마치 우리들의 가족을 확대경으로 재연해 놓은 것 같다.


  내가 가족이란 체계와 관계의 변화와 궁극적인 인간의 심리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8년 전, 어떤 소녀의 꿈 잃은 눈빛이 잊히지 않아서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는 소녀였다. "학교는 어쩌니?"라는 나의 질문이 무색하게 "가게 되면 가겠죠 뭐..." 라며 한여름 태풍에 종이짝처럼 구겨지는 대답이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족이란, 한 구성원의 필연적 희생이 있어야만 비로소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럴 힘이 그땐 없었다. 불안을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삶의 연륜으로도 힘이 되지 못했다. 어른은 무지했고 아이는 정신적 공항상태였다.



이 책 속에도 한 소녀가 살고 있다. 물론, 8년 전 내가 알던 소녀와는 사뭇 다른 패턴이긴 하나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선상에서는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수면 아래 숨겨진 희생과 수면 위로 노출된 희생이라는 것에 차이를 둘 뿐 두 소녀는 가족의 관계 유지에 큰 기여를 한 샘이다.  





‘나를 좀 봐주세요 나 지금 여기 서 있어요’


라고  큰 딸 클라우디아가 자살을 기도할 만큼 절박하게 외치지만 가족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주 호소 문제가 모녀 갈등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부부의 갈등, 부자간의 갈등, 부녀간의 갈등 등 원가족으로부터 전수된 여러 겹의 맞물린 삼각관계가 이 가족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문제의 딸 클라우디아는 "자살"이라는 폭로를 통해 부모의 극단적 갈등상황을 중재하고 가족의 결속과 협력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또한 엄마 캐럴린과 아들 돈의 갈등 관계는 딸 클라우디아보다 더 격렬하다. 말한 바와 같이 이 가족의 갈등 상황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를  한 단위의 체계적인 관점에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사는,  클라우디아가 가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한, 의사소통의 부재로 유발되는 가족의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는지 말하듯이 보여준다. 가장 파워풀한 한 장면은 상담실에서 칼 휘태커와 아들 돈이 몸싸움을 벌일 만큼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것이다. 치료사도 가족도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것 같았으나 결국은 굉장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치료 순간이 포착된다.


“가족은 가족 치료자가 그 방법과 기술을, 약간의 마술적인 것을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 가족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가? 누가 가족에게 그게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는가? (중략) 우리 모두는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는 걸 안다. 인생에서 변화의 물결은 대개 천천히 움직이지만 때로는 짧은 순간에, 심지어 몇 마디 말로 굉장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중요한 치료 순간을 찾고 기다린다”    


참으로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휘태커는 가족의 역사와 체계와 정서를 통해 불화의 발단을 찾아내고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따뜻한 치유과정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치료사다. 탁월한 직관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겸손함과 가족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수용하며 문제의 가족을 엉킨 갈등과 저항 속에서 건강한 가족으로 재 탄생시켜 낸다.

 





매 순간 나는, 타인의 인생에서 낯선 이야기를 서술하며 반짝였던 삶의 가치를 그들의 빈 가슴에 녹여낸다.

매 순간 나는, 누군가의 삶의 폭풍 속에서 함께 방황하며, 함께 고민하며, 함께 조율하며, 무엇을 위해 견뎌내고 있는지 그들의 채워지는 가슴을 확인한다. 삶이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연속해서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간간이 찾아오는 한 줌 햇살 같은 긍정의 힘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몇 줄에 영혼이 털려 이 밤과 씨름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존재가치가 그럼에도 가족으로 인해 증명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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