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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반그리너 Dec 13. 2021

나는 귀신도, 스님도 아니다

새벽기상을 한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

"혹시 귀신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새벽 4시 반에 기상한다는 나의 근황을 듣고 이렇게 물었다. 농담이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냐는 뉘앙스였다. 순간 강연가 김미경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새벽에 기상하는 사람, 귀신 아니면 스님, 목사 아니고서는 웬만해서 할 수 없는 거다.

그렇다. 나 또한 새벽기상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 여겼다. 새벽잠이 유독 없는 사람이 할 수 있거나, 새벽에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만 새벽 기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의지로 새벽 기상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이런 반응도 십분 이해가 된다.

새벽기상을 한다고 하면 주변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대체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아'라는 반응. 직장도 있고 가정도 안정적인데 대체 왜 그러는지, 뭘 위해서 그러는지 이해 자체를 못할 때 이런 반응을 보인다.

둘째, '대단하다. 하지만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라는 반응. 첫 번째 반응보다 덜 부정적이다. 새벽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 바람직한 일이지. 열심히 해, 응원할게!!! 끝.

셋째,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반응. 졸리진 않은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이 시간에 대한 니즈가 있다는 신호다. 나는 그런 반응 놓치지 않고 성심성의껏 내가 느끼는 새벽기상의 장점을 말해준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이런 부류에는 '해볼까'에서 '해볼게'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직까진 첫 번째와 두 번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인정한다.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 네시 반도 안 돼 졸린 눈을 비비며 명상하고 책 읽고 운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해도 길고 공기도 차가운 요즘에는 포근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 자체가 더 큰 도전이다.

나도 아침잠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 생각했다. 잠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집에서 밀린 육아를 하고 쓰러지듯이 잠에 들면 잠자는 시간만큼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늘 잠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벽기상이 가능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새벽이 내게 주어진 크고 작은 문제들을 풀어줄 해답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기계발 모임에 들어가 새벽에 함께 일어나는 사람들과 인증을 하고 새벽에 줌을 통해 운동을 하고 지금도 새벽기상이 좋다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작심삼일로 끝났을 결심을 반년 가까이 흔들림 없이 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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