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산에 가고 싶어졌다
작년 가을, 나는 산에 너무도 가고 싶었다. 과도한 업무와 불규칙적인 근무시간 때문에 이틀에 한번 꼴로 야근을 해야 했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야근을 서야 했기에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했고,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안 됐다. 코로나19로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집에 있었고 둘째는 엄마 손이 많이 가는 네 살 배기였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면 텅 빈 주방에서 핸드폰 불을 켜놓은 채 와인이나 맥주를 마셨다. 출구가 언제일지 모르는 긴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뒤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전진할 힘도 남아있지 않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답답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무렵 산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소리를 질러도 아무렇지 않은 공간은 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산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은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산에서는 소리를 지를 수 없다. 특히 새벽에는 더더욱) 다행히 같은 동네에 살던 친한 친구의 제안으로 산에 같이 다닐 수 있게 됐다. 마침 이사 간 집 근처에 산까지 있어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한 가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산에 언제 갈 수 있단 말이지?
새벽 밖에 없었다. 아이들 다 재우고 야간 산행을 할 수도 없었고 주말 점심 이후로 가려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산행을 위해선 아이들이 자고 있는 시간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새벽 5시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일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내게 새벽이라는 시간이 있었구나 깨닫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나의 새벽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새벽 기상에 감히 도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출처: Pixabay
어릴 적 엄마는 새벽 5시에 일어나셨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을 차려야 했고 두 딸의 도시락도 싸야 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하루를 열어준 엄마 덕분에 집 안에는 매일 아침마다 밥 짓는 냄새가 났고 부엌엔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직도 엄마는 5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했던 엄마세대에 비하면 우린 참 다행이다. 아이들 도시락을 쌀 일이 거의 없고 아침 준비를 도와줄 여러 대안들이 있다. 덕분에 우리는 새벽이라는 시간을 좀 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간만큼은 주인이 없고 방해물도 없어 지금이라도 당장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면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혹자는 물을지 모르겠다. 왜 새벽이어만 하냐고. 나의 경우엔 안 되는 시간을 지우고 또 지워서 남아있는 시간이 새벽 밖에 없었다.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꼭 새벽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아이를 재우고 육퇴(육아 퇴근)를 한 후 밤이 되어서도 혼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기에 새벽만큼 좋은 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새벽엔 핑계 댈 거리가 별로 없다.
<미라클 모닝>의 저자도 한 얘기다.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애들이 아프다고, 저녁 약속이 잡혀있다고, 우리의 습관 정착을 방해하는 많은 핑곗거리들이 아침시간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둘째, 유혹이 덜 한 시간이다.
밤에는 TV나 영화도 봐야 하고 치맥도 먹어야 하고 할 게 너무 많다. 애들을 재우고 나면 책을 잃거나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육아 퇴근하고 늘어져야 할 시간이지 각 잡고 앉아서 책 읽고 명상할 시간은 아니다.
셋째, 꾸준히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내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수만 있다면 기상부터 애들이 깨기 전까지 나만의 시간을 고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된 시간 안에서 계획해 놓은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소복이 쌓인 먼지를 탈탈 털고 그냥 이 시간을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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