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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연 May 20. 2024

음식 단상(斷想)

오해와 편견의 행복. 도토리묵

오랜만에 지인들과 가벼운 산행을 했다.

싱그러운 봄 향기가 남아 있는 5월 하순의 청량한 숲. 이리저리 난 숲 속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절로 나는 코웃음에 눈이 자꾸만 초승달처럼 접혔다.

길은 그 위를 걷는 사람을 자신의 색으로 동화시킨다. 숲은 숲처럼, 해변은 해변처럼, 도심 번화가는 번화가처럼, 어두운 골목은 그 어둠 속에 메아리치는 발자국소리처럼...

어느새 산바람이 되고 나뭇잎이 된 나는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를 허밍으로 흘리며 사박사박 걸었다.

한껏 들이마신 숲의 향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우자

그 맑은 기운 온몸 안으로 뻗어나가는 게 느껴져 절로 눈도 감다.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이 몸에 가득 배인 소나무 향을 나누며 눈인사를 한다.

좁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인 듯 낯설지 않은 몸짓으로 서로에게 길을 내어주기도 한다.

숲은 어느새 그 품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저인 듯 바꾸어 버렸다.

함께 옆에 같 서로.......

숲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살아가는 방식처럼

함께 옆에 같이 서로.


산을 내려와 숲을 벗어나니 저만치 향토식당이 보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친다 했던가.

일행과 난 먹음직스러운 메뉴들이 적힌 식당 입간판에 홀린 듯,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손님들이 먹고 있는 청국장과 나물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잠시 후 주인장인듯한 넉살 좋게 생긴  이 다가와서는, 우리 몸 안의 독소를 모두 해독하고 중금속도 배출하는 도토리묵무침은 안 드시냐며 너스레를 떠신다.(야채도 당신의 텃밭에서 모두 재배하신다고 가슴을 쭉 펴시기도 했다.)

사람 좋은 주인장의 거듭된 권유에 우린 도토리묵무침도 추가 주문했고 그때부터 지인들의 토론이 시작됐다.

누가 도토리묵을 먹으며 다이어트를 성공했다더라. 도토리의 쌉싸름한 맛이 바로 몸에 좋은 약이다. 도토리 묵이 숙취해소에 그렇게 좋다더라 등등.

그러던 중 대망의 도토리묵무침이 식사보다 먼저 나왔고, 나와 일행은 숲이 가득 담긴 듯 신선한 그 요리를 참 맛있게 먹었다.

이내 나온 보리밥과 청국장찌개까지 싹싹 비운 후 식당을 나와 후일을 기약하며 헤어진 우리들.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문득 도토리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었다.

도토리, 그래 몸에 좋지.

나 역시도 도토리가 몸에 좋은 견과라 풍월로 들은 바가 있기에 별 의심 없이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나무위키]에 실린 글에 의하면 도토리는 원래 (멧) 돼지가 먹는 밤, 즉 (돼지)돝밤이라서 도톨밤으로 불리다가 '밤'자가 탈락 후 '이'자가 붙어 도톨+이가 된 후 도토리로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항간에 알려진 숙취해소나 중금속 배출 및 독소의 배출과 해독작용에 대해서는 관련연구가 사실  전무하다니...! 전무하다고?

탄수화물과 수분이 많아 신석기시대부터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되긴 하였으나, 먹거리가 다양해지며 자연스럽게 방출된 열매일 뿐이란다. 도토리 100g당 지방도 24g이나 되고 칼로리도 390kcal이니 실제 다이어트와는 거리도 멀어 보인다.  그리고, 떫은맛을 내는 탄닌 때문에 많이 먹으면 소화불량과 변비에 걸리니 150g 이하만 먹으라나. 어디 그뿐인가, 100g당 칼륨 함량이 540mg이나 되어 신장 질환을 앓고 있거나 당뇨가 있는 사람은 섭취에 유의해야 한단다.

아이고... 조금 전까지 그리도 극찬을 하며 먹었던 음식이 도토리묵무침이 아니었던가.


문득, 예전에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아는 게 병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거짓말에도 하얀 거짓말과 착한 거짓말이 있듯이

오해와 편견들에도 행복도파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멀리 보아야 예쁘다.

때로는 한 눈을 감고 세상을 보아라.

라는 말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너무 속속들이 알려하지 않아야 행복해지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누가 도토리를 한 번에 200g씩 먹겠는가.

도토리 껍질을 까 바짝 말린 후 곱게 낸 가루를 물에 개어 전을 부치고 묵도 쑤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주변사람들과 나눠 먹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좋은 것이라 알고 있는 음식이 있으면 늘 주변과 함께 즐기는 족이 아니던가.

과용과 과신, 맹신만 아니라면 도토리의 효능에 대한 오해 정도는 충분히 행복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믿어본다.

행복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는 오해와 편견.

도토리묵에 대한 오늘의 단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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