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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Oct 26. 2022

당신의 첫 여행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교토&오사카

이제는 슬슬 오래된 추억들이 버겁다. 어제 같다고 말하기엔 조금 멀리 온 2016년 초여름. 그해 일본에 갔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벌써 6년 전이라 희미하다. 옛 기억은 어째서 흐릴수록 더 예쁘고 아련하다. 덕분에 하얀 모니터 위로 여러 날 밤, 그만큼의 새벽이 스쳐갔다.


그때도 나는 거의 모든 게 처음이었다. 사회 초년생, 첫 직장,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날짜가 적힌 달력 속에서 엉거주춤 눈치보고 있었다. 수중에 백만 원 남짓 있었던 것 같다. 취직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었다. 애매한 금액이었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이유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니까. 아마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당시부터 엔저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일본으로 가겠다는 결심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먼저 교토에 갔다가 오사카를 들러 돌아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친구와 함께 열심히 궁리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나 해서 지도까지 인쇄했다. 지금은 아주 멍청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 종이 지도가 썩 유용했다.



공항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교토와 오사카의 일정이었으니 아마 간사이공항으로 갔을 것이다. 열차를 타고 찍은 사진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난카이였는지 JR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열차에 앉아 힐끔거렸을 풍경도 지금은 모두 번져 하늘색만 아른거린다. 그래서 나는 이 여백들을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하는지 종종 고민한다.



교토에 잡은 숙소는 깔끔했다. 나란히 놓인 세 구의 침대가 딱 내 키만큼 작았다. 게다가 주방과 세탁기까지 딸려있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동시에 묘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전에 누가 한 번도 주방이나 세탁기를 이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걸 사용할 일이 없었다. 숙소가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 다이닝룸은 지금도 새것처럼 보일까?



저녁에 도착했지만 일정이 하나 있었다. 밤에 이나리 신사에 가기로 했다. 9시에서 10시 사이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시도였다. 일본은 안전한 편이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신사까지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교토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굳게 닫힌 건물 너머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관광객답게 코인 세탁소와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진을 찍었다. 한자와 가나가 적힌 길에서 작은 신당 몇 개를 지나쳤다. 신들의 나라. 언젠가 일본은 인구보다 신과 요괴 숫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그저 우스갯소리는 아닐지도 몰랐다.



유명한 관광지에도 늦은 시간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나리 신사는 너무 조용해서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이 꺼진 세전함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외지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 눈매가 날카로웠다.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신사의 계단을 올랐다. 곧 사진으로 봤던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도리이로 이뤄진 붉은 길은 장관이었다. 밤이라 그런지 마치 저승을 향해 놓인 기다란 회랑 같았다.



붉은 도리이들 사이로 비치는 빨간 불빛을 때문일까. 나는 그때 어릴 적 살던 집 근처의 홍등가를 떠올렸다. 그 거리에는 어둡고 음산한 조명과 기분 나쁜 침묵이 짙게 내리앉아 있었다. 입구마다 흘러나오는 담배연기 만큼이나 자욱하게 긴장감이 감돌았다. 불경한 기억이 서려 터널을 걷는 동안 공포영화를 촬영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즐거웠다.


만개가 넘는다는 도리이는 저마다 어떤 열망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사람들이 개인의 소원을 위해 세운 공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붉은 기둥에 적힌 글자들이 차압딱지의 건조한 고지 안내처럼 보였다. 도리이의 주인들은 신이 원하는 만큼 행복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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