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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리 Aug 19. 2021

아껴 먹는다는 것

초밥정식을 먹을 때도

가장 좋아하는 피스는 아껴두었다 마지막에 먹었다

해물이 몇 안 들어간 짬뽕을 먹을 때도

가장 좋아하는 새우는 첫 입에 먹지 않고 두었다 나중에 먹었다


새로 산 전자제품의 보호필름을 최대한 늦게 떼듯이

새로 장만한 옷을 개시할 '때'를 기다리며 장롱에 모셔두듯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장 나중으로 아껴두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장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뤘는지

사실 딱히 이유랄 건 없지만

그냥 본능적인 것이었다


공연의 제일은 피날레라고 하였던가

인기가요에서도 마지막 순서는 제일 인기 많은 가수의 특혜다

영화에서도 반전은 마지막에 터뜨린다

생선도 꼬리가 제일 맛있다더라


누가 뭐라 한 적은 없다

그냥 스스로 나도 모르게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


12피스 초밥을 다 먹어갈 쯤이면 이미 배가 부르기 시작한다

마지막 한입으로 남겨두었던 참치 뱃살을 먹을 쯤이면

열심히 움직이던 아랫 턱이 차츰 지쳐갈 때이다


아껴두었던 새우 한 마리를 먹을 쯤이면

뜨거웠던 짬뽕 국물은 이미 식어버렸을 때이다


최고의 피날레도 나쁘지 않지만

당장의 행복을 굳이 미루는 습관을 조금은 바꿔봐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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