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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다코치 Mar 22. 2024

「아무튼, 뜨개」

“첫 코부터 마지막 코까지 통째로 이야기가 되는 일”

생각해보면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에 충성해야 옳다는 생각은 뜨개에만 있지 않다.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우리는 한 가지 일을 오래하는 사람을 칭송한다. 장인, 노포, 원조를 이야기할 때 이미 존경과 신뢰의 감정이 담겨 있다. 반대로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잡스럽다거나 왜 그렇게 일을 벌이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한 가지나 제대로 하라는 말은 가장 무도하다. 나는 여기에 대해 정말이지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스무 살 이래 내 진로 찾기의 여정은 그야말로 잡의 향연이었다.

학부 전공은 경영학인데 복수 전공은 중문학이었고 대학원에서는 미디어를 배웠다. 그러는 틈틈히 중국어와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했고, 디자인 툴과 데생과 시나리오를 배우러 다녔다. 장래 희망 변천사는 차마 읊지 못할 만큼 길다. 그것도 문과와 이과와 예체능을 넘나드는 스펙터클한 변천사라 책 한권으로는 부족할 지경이다. 이렇게 말하니 내 학창 시절이 마치 호기심 가득한 소녀가 적성을 찾아 떠나는 좌충우돌 시트콤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나는 왜 한 가지 일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들쑤시도 다닐까. 내 전문 분야는 뭐가 되는 걸까. 내게도 천직이 있을까. 나를 따라다닌 건 정체성에 대한 걱정과 자책이었다. 



「모든 것이 되는 법」의 저자 에밀리 와프닉은 한 가지 일을 계속하기보다는 다양한 일에 흥미를 갖고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기를 즐기는 사람을 다능인이라고 정희했다. 내가 평균적인 인간에서 벗어난 돌연변이가 아니라 다능인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안도감이란. 내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아주는 다능인이라는 고유명사가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었다. 나를 표현하는 명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에밀리 와프닉 역시 다능인이다. 그는 영화와 법률, 음악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경계가 뚜렷해 보이는 일들을 직업적으로 넘나드는 사람이다. 그 또한 정체성으로 고민하던 시간을 겪었다. '내가 여러 분야를 넘나들어야 행복한 사람이라면 제구실을 하며 살 수 있을까?' 그러다 다능인이라는 범주를 발견했고, 오랜 시간에 걸친 상담과 인터뷰를 통해 다능인의 공통점을 찾아냈으며, 다능인의 열정을 지속할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러내고 자랑스러워하는 다능인이란 세상과 소통하고, 우리의 일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두려움과 반감에 직면해도 우리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항상 편안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 같이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하루가 짧다. 아마 앞으로도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좁히지는 못할 것이다. 더 넓어진다 해도 자제할 마음은 없다. 기꺼이 잡스럽게 거침없이 산만하게 좋아하는 일을 늘려갈 생각이다.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재미있는 건 뭐든 다. 




"단언컨대 내 인생을 바꾼 것은 책이 아니라 뜨개다!"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아무튼, 뜨개」

번역가인 저자가 취미 생활로 하고 있는 뜨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나가는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읽지 않는 책의 종류가 '에세이'부류인데 코바늘을 취미로 하면서 우연히 들은 책 제목에 꽂혀 읽게 되었다. 

헉. 그런데 이 책 너무 재미있다. 


니터라면 공감할 만한 뜨개질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 마음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문어발에 대한 마음을 나의 진로와 빗대어 이야기하고, 한 코가 빠져 열심히 뜨던 것을 다시 풀면서 엉켜버린 실로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뜨개에 덧씌워진 '여성스러움'이라는 프레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부분도 참 흥미로웠다. 

뜨개 책이라고 하면 보통 뜨개 도안이나 뜨개 방법이 들어있는 책이 대부분인데 이 책은 뜨개하는 마음, 뜨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 책이다. 

실과 바늘을 움직이는 일이 어떻게 한 사람의 내면까지 바꿀 수 있는지 그 비법을 풀어줄 뮤즈를 오늘도 찾아 해맨다는 저자.. 


「아무튼, 뜨개」 라는 책 제목을 보고 책 한권에 어떻게 뜨개 이야기만 주구장창 할 수 있을까?  그런 책이 출간 될 수 있을까? 싶은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

그리고 에세이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 

반 정도 읽었는데 뒤에 이어지는 내용도 궁금하다! 


독서 편식하지 말아야지. 


이번주에 완성한 모티브 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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