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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다코치 Jul 19. 2024

후각 상실에 대한 두려움


7월 첫째주 금요일7월 첫째주 금요일

남편의 회사 동료가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하루가 지난 주말 저녁, 와인 축제에 갈 무렵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더니 집으로 돌아온 직후 온 몸을 덜덜 떨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감기가 옮았구나. 

결국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하는 남편, 오한 발열 두통 근육통으로 너무나 괴로워 했다. 

감기바이러스가 내게도 전염될까봐 우리는 서로 접촉하지 않았고 잠도 다른 방에서 잤다. 

그러던 다음날 아침부터 내게도 조짐이 보이더니... 결국 옮았다.

온 몸을 바늘로 쿡쿡 쑤시는 듯한 고통과 오한 발열 두통_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코로나 백신 맞았을 때보다 30배 정도 더 강한 정도의 고통이 밀려왔다.

오한 발열이 약기운으로 사그라들면 온 몸이 땀범벅이 되고, 약빨이 떨어지면 다시 오한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고 두통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고 그냥 너무 아프다. 

정말 일주일을 꼬박 누워 있었다. 

이번 감기에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후각기능의 상실. 

감기 증상이 시작된지 이틀이 지나면서 후각 기능이 사라져 버렸다. 

코에서 뇌로 연결되는 통로로 짐작되는 부분이 찌릿찌릿 따갑고 아프더니 어느순간부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정말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평소 감기에 걸렸을 때 코를 심하게 풀면 일시적으로 후각이 상실되어 냄새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몇시간 지나면 아주 조금씩 다시 후각 기능이 돌아오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3일, 4일이 지나가도록 정말 냄새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가 나지 않으니 음식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차갑고 뜨겁고, 평소 알던 음식의 식감, 텍스쳐, 미세한 짠맛, 단맛 등만 느껴지는 정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조차 웬지 낭비와 사치로 느껴진다. 

어짜피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는데 그럴 바엔 그냥 아무 것이나 먹어서 배만 채우면 되지 뭐.. .

몇시간 지나면 돌아오겠지, 자고 일어나면 후각이 돌아오겠지 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더 두려워졌다.

헉.. 

나 이러다가 평생 냄새 못맡는거 아니야???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냄새와 음식의 맛을 앞으로 평생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너무 무섭고 두려운, 아주 끔찍한 일이다. 

후각 기능 상실에대한 두려움. 

아니 이미 후각 기능을 잃은지 며칠이 지난 지금. 

너무 우울해졌다. 

특히 맛있는 것을 먹으며 충족시키는 만족감, 행복이 사라지면서 뭘 먹어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냥 하루종일 매일 매일 잠을 잔다.

잠이 오지 않아도 그냥 잤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니 삶의 질이 이렇게 확 떨어지는데.. 

갑자기..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이 점점 가지를 뻗어나간다. 

다행히 4~5일 지나면서 후각 기능이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 돌아왔다.

강한 냄새가 콧 속으로 훅 들어오면서 후각신경이 다시 살아나는가보다. 

하지만 밤에 코막힘이 너무 괴로워 스프레이형 약을 콧 속에 뿌리고 나면 다시 후각이 상실된다..ㅜㅜ

약을 넣으면 냄새를 맡지 못하고, 약을 넣지 않으면 숨 쉬기가 어렵다. 

하, 꼬박 열흘이 지났다. 

아직도 후각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목따가움, 두통, 기침으로 괴롭다. 

열흘동안 생산적인 활동 하나 하지 못한 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동료도 밉고 바이러스를 가져와 나에게 옮긴 남편도 밉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나의 괴로운 마음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진다. 

.

.

미워해봤자 뭐하겠나, 지나가버린 시간을 곱씹어봤자 뭐하겠나. 

시간이 걸려도 후각은 결국 돌아오겠지. 

이 경험 또한 내게 필요한 경험이었기에 일어난 거겠지. 

직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서,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몸이 회복되면 그동안 밀린 일들도 더욱 잘 해내고 독한 바이러스를 이겨내 강한 항체가 생긴 내 몸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다면, 원망하고 괴로워할 게 아니라, 결국 내게 필요한 경험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교훈 삼아,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가자. 

.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바이러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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