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하자
2024년 2월 1일 오전 9:30
더이상은 미룰 수 없다.
작년 여름, 처음 책을 써야 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벌써 두 계절이 지났다.
컨셉, 목차, 기획안을 끄적이던 종이는 어디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미루는 걸까?
글은 한 자도 쓰지 않으면서, 아니 쓸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만 진지하게 하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다.
더 급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일들에 밀리는 것,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인풋이 필요하다며 쓰기보다는 책읽기를 선택하는 행동은 글쓰기를 피하려는 저항임을 알아차린다.
나는 왜 글을 쓰지 않는 걸까? 뭐가 걱정되는 걸까? 아님 뭐가 두려운 걸까?
이렇게 망설이다 사라져버린 계획들이 뭐 한둘인가..
뭘 쓰려고 했는지 조차도 희미해지고 아예 쓰려는 마음 조차 먼지 속으로 사라지려는 찰나.
눈에 띈 한 블로그의 공지, 2월 한달간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한다는 것.
매일 일정한 시각 줌에 모여 각자만의 글쓰기 시간은 가진 후 5분정도 이야기 나누고 끝내는 모임이다.
평일 오전 9:30am~10:30am
뉘엇뉘엇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밀린 카톡을 확인하고 이웃 블로그를 둘러보고 어영부영 흘러보낼 시간에 한시간이라도 글쓰기에 집중해 보는것, 일단 해보자.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나를 밀어놓고 습관부터 들이자.
지금까지 쓰는데 15분이 걸렸다. 고작 몇 줄 쓰는데 15분씩이나 걸리다니....
아무튼, 이번 한 달은 글쓰기 '습관'들이기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8:20 기상, 머리가 지끈한게 무겁다. 이불 정리와 세수를 마치고 커피를 내려 책상에 앉았다.
어젯 밤 단팥빵 한개를 냉동실에서 꺼내 놓고 잤는데 아침식사로 커피와 너무 잘 어울린다.
아시아마트도 없는 이 곳에서 팥을 구해 앙금을 만들고 단팥빵을 만들어 낸 내 자신이 참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두유로 두부를 만들고, 타피오카 가루로 떡볶이 떡을 만든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는 제목으로 이곳에서 일취월장한 음식 솜씨에 대한 글도 한번 써 봐야겠다.
화이트 세이지를 먼저 태우기로 한다. 오늘부터 시작이니 분위기 전환 겸! 좋을 것 같다.
겨울에 비가 많이 오고 습한 스페인 갈리시아, 매일같이 비가 올 때는 습기를 머금은 화이트 세이지에 불 붙이기도 쉽지 않은데 이번 주 내내 비도 오지 않고 습도도 낮아져서 그런지 불이 꽤 잘 붙는다.
활활 타오른다. 이정도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화이트세이지 연기가 내 방 전체를 뒤덮어 메케하다.
그래, 이왕 이렇게 피워진 것. 부정적인 에너지는 모두 소멸되고 공간도 깨끗하게 정화되길 바랍니다.
라는 마음으로 연기가 모두 빠져나가길 기다린다.
화이트세이지에서 뿜어나오는 연기를 보고 있다보니 9:25분 심호흡을 천천히 다섯 번 하고 줌에 접속한다.
세수만 겨우 한 푸석한 얼굴과 쫙 달라붙은 머리카락으로 화면을 켜야 한다는 것이 민망하지만.. 뭐 괜찮다!!
나 말고 세 분의 참가자가 더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각자만의 글을 쓰고 있다.
또 15분이 흘러 이제 10시다.
시간이 이렇게 잘 가다니... 30분동안 딴짓하지 않고 글을 쓴 내가 신기하면서 기특하기도 하다.
요즘 도파민 중독으로 뇌가 아주 바사삭 부서졌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냐면....
책을 읽으려고 펴 놓고 핸드폰을 동시에 열어본다.
핸드폰도 보고 싶도 책도 읽어야 겠다. 결국 그 짓을 동시에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 한줄 읽다가 핸드폰 기사 한 줄 읽고...
하.... 정말 미친거야? 결국 핸드폰을 끄며 잠을 청한다...
한가지 일을 할 때 다른 일들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고, 이것저것 멀티태스킹으로 번지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적어보니 나 정말 심각하네.
..
괜찮아,
이제부터 회복하면 되.
글쓰기 습관화, 선택과 집중, 우선순위 선정으로 다듬어보자.
오늘은 첫날이니 여기까지 :)
#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