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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Apr 03. 2024

02. 첫 번째 배아 삽입 만에 생긴 아이, 홀리

초음파로 본 아기집

인생 첫 수면 마취를 앞두고도 덤덤한 아내

아내의 신체를 과배란 상태로 유도하는 준비 과정을 마치고, 배아 수정에 필요한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기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난자 채취는 시험관을 준비하는 여성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다. 멀쩡하고 건강한 난소 안에 보관되어 있는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의료 기구로 난자를 흠집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개가 진주를 감싸 안고 있듯 여성의 난소도 난자를 조심스레 보호하고 있다. 두터운 난소의 보호막을 열어주어 난자를 타인에게 허락하기 위해 여성은 전신 마취를 한다. 난자를 보호해야 하겠다는 신체적 본능과 의식의 흐름을 마취를 통해 잠재우는 것이다.


인생 처음으로 전신 마취를 하는 그날도 아내는 덤덤하고 침착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나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오르락내리락 거리기도 했다.  두려운 걸 애써 숨기는 건지 혹은 정말로 이 과정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아내의 표정만 봐서는 이를 알아챌 수 없었다.



비밀스럽게 숨겨진 정자채취 공간에서 느낀 점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몸에 지니고 있는 씨앗을 내어주기 위해 배정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정자를 내 몸 밖으로 보내는 공간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처럼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었다. 


문을 열면 크고 안락한 의자가 한가운데 놓여 있고, 정면에는 티비와 헤드셋이 걸려 있다. 남자가 씨앗을 채취하는 과정은 여자의 것과는 다르다. 고통을 수반하는 시술이 필요치 않으며, 오직 쾌락의 감정을 이끌어 내어 정자를 내보내게 될 뿐이다.


임신을 하기 위한 중대한 상황에서 여자는 장기에 상처를 내며 희생하지만, 남자는 그저 쾌락을 추구하며 씨앗만 뱉어 낸다. 생명을 만들어 내는 중대한 과정 속에 남자의 역할이 너무나 작고 하찮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숙연해져 고개가 숙여진다.



난자채취 후 여성이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

갓 뽑아낸 따뜻한 정자를 컵에 담아 병원에 내어주고, 아내가 시술을 준비 중인 공간으로 이동했다. 로비에 앉아 있는 많은 남편들 틈에 앉아 아내를 기다렸다. 스크린을 통해 아내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내의 이름 옆에 대기 중이라는 상태 메시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술 중으로 바뀌었다. ‘시술이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를 속으로 돼 내었다.


아내를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아내의 건강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었다. 시술은 약 30분 동안 지속 되었지만, 내가 느낀 체감 시간은 2시간 가까이 되었다. 그 공간에서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시술이 종료된 후 마취에 깬 아내가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배를 움켜 잡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내의 몸속 신경은 난자에 생긴 상처를 빠르게 인식하여 몸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손 잡으며, 아내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전부였다. 늘 아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지만, 고통의 순간에 아내에게  힘을 보탤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내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를 온 진심을 다해 바랬다.



우리의 아이, 홀리의 탄생

배아 이식한 지 일주일이 경과되었고, 아내는 피검사를 진행했지만 임신을 한 여성에서 확인되는 수치에 모자랐다. 그리고 그다음 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초음파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배아 착상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아내의 배 곳곳을 짚어가며 자궁을 확인했다.


선생님의 눈에 밤톨 만한 점이 들어왔다. “아기집이 보이네요! 임신 됐어요 축하합니다!”  2023년 11월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이 점처럼 보이는 것이 아기가 된다고? 순간 초등학교 때 과학책에서 보았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연상했다.  어안이 벙벙했고, 신비롭고 감격스러웠다.


병원 진료를 마친 후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콩나물 국밥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를 기다리며, 태명을 무엇으로 할지 행복한 고민을 나누었다. 한참 고민하던 중 아내는 홀리(Holy)로 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지난여름부터 한 교회에 정착하고, 많은 분들이 우리 가정에 아기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의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도 덕분에  아이가 우리를 찾아왔음을 그날 그 식탁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뱃속의 자라고 있는 아기를 홀리라 부르기로 했다.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날 거룩할 홀리를 끝까지 안전하게 지켜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혹시 시험관을 준비하는 부부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시험관을 준비하는 모든 복잡한 과정에서 남성은 오로지 정자 만을 제공한다. 반면, 여성들은 희생의 과정이 많다. 몸을 임신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이 총동원된다.  시험관 아이 준비는 여성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그렇기에 시험관 아기를 갖겠다는 결정은 무조건적으로 여성의 선택에 기반해야 한다. 여성이 원치 않는데 아기를 갖기 위해 시험관 아기를 권유하는 것은 상대의 고통을 고려하고 배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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