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도착한 도쿄
비행기를 놓쳤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아침 8시 이스타 항공 도쿄행 비행기 탑승을 놓친 우리는 오후 3시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남은 시간은 장작 7시간.. 밥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와 디저트를 곁들여도 한국을 떠날 시간은 까마득히 멀리 있어 도무지 대면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전날 함께 술 한잔 한 친구는 숙취가 심해 카페 의자에서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비행기를 놓친 애석한 상황에서 태연하게 잠을 청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이없는 실웃음이 지어졌다. 친구의 천하태평 느긋한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그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했다.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 없음을 빠르게 알고,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는 해탈한 자세가 우러러 보였다. 함께 커가는 학창 시절의 성장 시기에도 친구는 만사에 예민함을 두지 않았다. 늘 여유 있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바라볼 뿐이었다. 삶을 마주하는 그의 여유로운 자세를 본받고 싶었다.
또 한 번 가로막힌 체크인
탑승 3시간 전 이번엔 여유 있게 체크인 카운터를 들렀다. 항공사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었다. 탁탁탁 우리의 여권 정보를 기입한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한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공항 직원은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선배를 부른다. 비행기 티겟을 추가 구매했지만, 또 지불해야 할 비용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비용은 다름 아닌 노쇼 차지였다. 비행기를 타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멍청 비용’을 다시 내라니. 날뛰는 심장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여행사에 또 전화를 했다. 다행히 이번 사태는 일반적이지 않았나 보다. 여행사는 항공사 측으로 연락을 취해 실타래 같이 꼬인 상황을 풀어주었다. 비행기를 놓친 우리는 트립닷컴과 이스타항공이 물어뜯기 쉬운 ‘호갱님’ 이자 ‘먹잇감’이 되어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여행사와 항공사의 협상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에 성공했다. 도쿄 여행 에피소드 3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여행 썰을 풀어보려 손을 풀었다.
드디어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4월 17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kkday에서 미리 구매한 스카이라이너(고속열차)와 72시간 무제한 지하철 탑승 티켓을 수령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까지 빠른 시간 내 이동하기 위해서는 스카이라이너 탑승은 필수다 (약 1시간 소요).
지하철 탑승 카드는 내가 사용했던 시간별 무제한 탑승권 보다 패스모 카드를 추천한다. 도쿄의 지하철은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무제한 탑승권은 국영 기업 라인의 지하철 탑승 시만 사용할 수 있어 민간기업의 라인을 타거나 환승해야 할 때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이동 중에 번거롭고 불편한 요인이 된다.
스카이라이너에 탑승하고 도쿄에서 한 번의 환승을 거친 후, 숙소가 위치한 미노와에 도착했다. 시간은 어느덧 8시를 바라보고 있다. 미노와역에서 숙소로 걸어가는 길,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 간판과 거리에 늘어서 있는 아담하고 정겨워 보이는 선 술집. 그제야 일본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이곳으로 나와 사케를 한잔하고 싶었다.
Santo Sans Rest 미노와 시장에 위치한 아늑한 게스트 하우스
3박 4일 동안 머무를 숙소는 미노와 시장 내에 위치한 산토 산스 레스트. 여행을 좋아하는 화목한 가족(아빠 유타, 엄마 나나, 딸 안나)이 머무르면서 알차게 공간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일본 특유의 다다미로 구성된 방은 3평 남짓으로 아담하지만, 숙소의 크기를 중요시하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좁은 방이 여행을 불편하게 하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1층 로비에는 고타츠 테이블이 있어 편의점에서 안주거리를 사들고 맥주 한잔 하며 여행에 쌓인 피로와 추억을 풀기 최적의 장소였다.
밤 8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장 유타는 피곤한 기색 없이 우리를 웃는 얼굴로 맞아주며, 체크인을 도와준다. 프론트 데스크 뒤편에는 미노와 맛집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유타에게 밤늦게 저녁 식사 할 수 있는 괜찮은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라면 집 몇 군데와 이자카야를 추천받고, 음식물이 모두 소화가 되어 텅 빈 배를 싸매고 헐레벌떡 자리를 나섰다.
Ramen Aji-Aji 그냥 들어간 일본의 아무 라면집
우리가 도쿄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식당은 ‘라멘 아지아지’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결제는 현금으로만 가능하다. 환전을 해오지 않은 나는 근처 세븐 일레븐으로 뛰어가 ATM기에서 엔화를 뽑았다. 신한은행에서 sol 트래블 카드를 만들어와 현금 인출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았다.
키오스크의 언어는 일본어로만 설정되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구글 지도에서 메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뒤 먹고 싶은 메뉴를 그림 찾기 하듯 골라 주문해야만 했다. 나는 돼지 뼈 라면을 친구는 매운 라면을 선택했다.
예전부터 누군가로부터 일본에 있는 라면 식당은 어딜 들어가도 맛있다는 것을 익히 들었던 나는 한껏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음식이 나왔다. 공항에서 조금 늦은 아침을 먹은 뒤 긴 공복 기를 거친 우리는 바닥이 넓적한 스푼에 국물을 그득하게 퍼 조금씩 빨아들였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국물, 약간 짰지만 오래 푹 삶은 사골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이번엔 면을 시음할 차례다. 면을 잡고 젓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이니, 면발은 부드럽게 찰랑 거리며 춤을 춘다. 부드러운 면이 입술을 타고 들어왔다. 오독오독 천천히 맛을 씹으며 음미했다.
‘아 이거지..’ 순식간에 라면 한 그릇을 비웠다. 메뉴가 나오기 전에 한껏 기대하고, 음식을 맛보면서 내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충만한 기쁨의 감정을 느낀다. 온갖 걱정이 지배하고 있는 일상에서 가끔 먹는 것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유지해야만 하는 필연적 행위로 전락하게 되지만, 일상을 비스듬히 비껴가 있는 여행에서 먹는 것은 온전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로 격상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며, 살아 있는 것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에 불현듯 감사함을 느꼈다.
라면 집을 나온 뒤 근처 이자카야에 들려 말린 열빙어 구이와 야키토리를 안주로 기린 생맥주와 고구마 사케 한잔 씩을 마셨다. 인천공항에서 쌓인 갖은 피로를 달랜 우리는 숙소에 들어와 씻고,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버렸다.
여행의 시작부터 많은 문제를 직면했지만, 인생의 지혜를 배운 하루였다. 이제는 불안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느끼는 조급함이라는 감정을 조금은 더 슬기롭게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