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수술 전 아내의 한 마디
7월 27일 출산 당일 새벽 5시.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아내와 나는 알람 소리에 즉각적으로 눈을 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충 물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미리 싸두었던 출산 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오전 9시에 제왕절개 수술을 예약하여, 수술 2시간 전인 7시까지 병원을 방문하면 되었지만, 우리는 마지막까지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 시간 더 일찍 6시에 한산한 병원 문을 열고 2층 수술 대기실로 올라갔다. 아내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었고, 출산 촉진제가 들어있는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촉진제(옥시토신)는 자궁문을 여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긴장한 아내가 마음 편히 출산할 수 있게, 옆에서 수다를 떨었다. 오는 길의 긴장감과는 다르게 우리는 병실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답답하면 서서 걷기도 하고, 짐볼 위에 앉아 위아래로 몸을 튀기는 운동을 천천히 반복했다. 또, 그러다 지겨울 때면, 어제 새벽에 함께 보았던 재난영화를 보았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계는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촉진제가 링거를 타고 흘러 아내 몸에 다량이 흡수되었지만, 아내는 자연분만 전 느끼어야 할 규칙적인 진통을 느끼지 못했다.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간호사가 병실을 방문했고, 아내의 생식기에 손가락을 넣어 내진을 했다. 자궁문이 겨우 1cm만 벌어져 있다. 8cm 이상으로 벌어져야 자연분만을 시도해 볼 수 있어, 그제야 우린 자연분만에 대한 미련을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게 “여보 나 할 만큼 했어. 후회 없어”라고 이야기한다.
아내의 아쉬움이 담긴 말은 나에게 아내의 매력을 다시 한번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아내는 뭐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는 사람이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본 다음, 그것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미련이라는 끈을 놓아주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다.
나는 아내의 두 손을 잡으며, 아이는 건강하게 잘 태어날 거라고 이야기했다.
9시가 되어, 제왕절개를 하기 위해 수술실로 향할 준비를 했다. 이제 나의 동행 없이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아내 혼자 이겨내어야 할 시간이었다. 본인 혼자서 수술실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무척 떨린다고 했다. 아내의 마지막 한마디다. “여보 수술 만약에 잘못되면, 홀리를 잘 부탁해”, “무슨 그런 얘기를?? 그런 얘기하지 마”
수술이 당연히 잘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내가 수술실을 들어갔을 때 내심 초조함을 느꼈다. ‘만약, 수술이 잘못된다면 어떡하지?’, ‘나 아내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는데?’ 7-8 평 내외의 대기실에 앉아 수술이 잘 될 수 있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벽걸이 시계의 분침이 30바퀴 정도 돌았나, 수 간호사 선생님이 대기실의 문을 두드려 방으로 들어왔다.
“홀리 아빠 이제 홀리를 맞을 시간이에요” 대기실 문을 열어 복도로 나간다. 아이의 쩌렁쩌렁한 울음소리가 확성기가 되어 병원 복도에 울려 퍼진다. 간호 선생님이 가만히 듣더니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홀리예요” 라고 말씀하신다. 기분이 오묘했다. 아내와 나의 상상 속에 존재했던, 홀리가 드디어 실제(외형적인 모습으로)가 되어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간호 선생님은 나에게 휴대폰을 달라고 말씀하시더니, 지금 심정을 물어보는 영상을 찍어주셨다. “홀리 아빠 소감 한 마디 해주세요”, “너무 감격스러워요. 여보 10개월 동안 홀리 품고 있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홀리야 우리를 찾아와 줘서 고마워. 앞으로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아이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탯줄을 자르기 위해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니, 몸에 끈적끈적한 노란 액체가 잔뜩 묻어 있는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홀리였다. 뒷 목부터 발목까지 천천히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내게 아이가 생길 거라 상상만 하고 있다가 실제의 모습을 마주했다. 10개월 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희망과 꿈이 현실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작은 아이의 배꼽에 연결되어 있는 탯줄을 의료용 가위를 들어 과감하게 싹둑 잘랐다. 마지막 남아 있던 엄마와 아이의 신체적 연결고리를 잘랐다. 탯줄을 자르는 느낌은 살짝 익은 곱창을 자르는 듯했다. 질감이 그렇게 질기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탯줄을 자르는 순간 아이는 세상의 하나의 객체가 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의료용 담요에 감싸진 홀리는 내 품으로 잠시 들어왔다. 아주 작지만, 목청은 쩌렁쩌렁한 아이가 내 팔에 얹혀 있다. 아이가 나의 행동으로 혹여나 다치게 될까 조심스럽고 천천히 움직였다. 잠시나마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아이의 체온과 나의 체온이 닿아 가족이라는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열매가 탐스럽게 열리는 듯했다. ‘홀리야 우리 딸이 되어줘 고마워. 그리고 축하해’. 잠시 동안 체온 나눔을 끝내고 아이는 신생아 대기실로 이동했다.
나는 수술 대기실에 다시 들어가 아내를 기다렸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아내는 수면 마취가 된 상태로 침대에 누워 들어왔다. 아내가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드렁드렁 코를 고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모두 무사하다. 하늘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