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Banksy @그라운드 서울
추석 연휴를 맞아 서울 종로구의 그라운드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뱅크시의 전시 ‘Real Banksy: Banksy is Nowhere’에 다녀왔다.
뱅크시는 영국 출신의 그라피티 아티스트이다. 그라피티는 공공의 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알려져 있다.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 낙서처럼 흔적을 남기기에 많은 작품이 불법으로 간주된다. 뱅크시는 전 세계 20여 개국의 공공장소에 그의 흔적을 남겼다(불법으로).
그라피티 하면 낙서, 부정의 인식이 강한데 왜 세계는 뱅크시의 흔적(작품)을 주목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그림에는 체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수에 의해 지배 구조가 형성되고, 부가 축적되는 자본주의를 비난하며, 자유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전쟁의 폭력적인 참상을 보여준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평등은 뱅크시 작품의 소재가 된다.
뱅크시 그림의 메시지 표현법은 우회적이고 모순적이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상반된 의미로 통용되는 대상을 한 프레임에 함께 담아낸다. 그래서 관객에게 그림을 바라보고 해석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소녀가 폭탄을 끌어안고 있거나, 벌거벗은 아이의 양옆에서 미키 마우스와 맥도날드의 광대가 손을 잡고 있다. 전혀 색다른 의미의 조합은 작품으로의 몰입을 이끈다.
만약,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기 위한 그림에서 환경의 잔인함만이 부각되어 있다면, 관객은 부정적인 상황/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빠르게 고개를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객체의 위치함은 관객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무엇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쟁인지, 전쟁 뒤에 숨은 속내는 무엇인지에 대해 그림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뱅크시의 비판 대상은 자신이 활동하는 예술산업에도 예외가 없다. 소수의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미술관이 도배되고, 그들의 지갑만을 배불리 하는 부익부 빈익빈을 비난한다.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실상은 그렇지 않음에 뱅크시는 역겨움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작품을 명망 높은 미술관(테이트, 루브르, 모마 등)에 도둑 전시해 버린다. 명화 속에 전시된 그의 작품은 2시간 만에 발각되어 벽장을 떠나기도 하지만, 운이 좋다면 일주일 이상 머무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예술계는 뱅크시를 이단아로 낙인찍을 법도 하지만, 그의 독창적인 예술성에 매료된다. 미술관은 도둑 전시된 그의 작품을 영구 소장용으로 보관하고, 그의 작품 평균가는 수십억에 달한다(작품 평균가 41억 4천만 원, 최고 낙찰가 256억 9천만 원). 뱅크시는 그가 혐오하는 엘리트 문화에서 오히려 더욱 주목받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대담하고 혁신적인 표현에 있을 것이다. 스스로 지구상 가장 최악의 교도소라 표현된 팔레스타인 장벽에 인류애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미술 시장 최대 경매장에서 낙찰된 그림을 파쇄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제대로 된 미술 교양 교육을 받은 예술가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창의적인 발상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때문에 할 수 없는 그것을 어느 예술가는 뱅크시라는 익명의 무기 뒤에 숨어 자유롭게 표출한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 Banksy-
그의 그림은 체제 속에서 불안한 자들이 그림을 통해 자기 주관을 더욱 뚜렷하게 가질 수 있도록, 반면 체제 속에서 편안함을 가진 사람이 체제의 부조리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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