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를 꿈꾸며
직장에서도 친구를 만나도 흑백요리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연출이 기가 막히다.’ ‘어떤 요리사의 식당은 꼭 가고 싶더라’ 등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 소재는 다양하다.
여러 가지 재미 요소가 있겠지만, 이 쇼에 숨겨진 메시징에 주목해 보고 싶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며 특히나 좋았던 ‘킥 메시지’는 공정성이었다. 오직 맛으로만 요리사를 평가하겠다는 제작진의 고민을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백수저와 흑수저를 맛다이 시킨다
이미 업계에서 많은 것을 이룬 백수저 요리사와 라이징 스타로 본인 만의 요리 토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흑수저요리사의 맛다이 대결을 볼 수 있다. 계급장 떼고 붙는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양쪽이 가진 요리에 대한 열정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따뜻하게 전해진다.
흑수저 입장에서는 이 대결이 평소 로망/아이돌로 우러러보았던 이와 꿈의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고, 백수저 입장에서는 유망주를 바라보며 요리에 대한 초심에 대해 회상해 보고 곱씹을 수 있는 경험이 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눈을 가리고 오직 혀 끝에 전에 지는 미각으로만 음식을 평가하게 하는 대결이 있다. 이 대결에서는 화려하게 포장된 요리사의 이력 따윈 중요치 않다.
미슐렝 원스타와 로컬 골목 요리사가 동일한 주재료를 가지고 만든 한 가지 음식으로만 대결의 승패는 좌우된다. 혀 끝에 온전한 판단과 생각을 맡긴 채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대중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의 흐름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있다. 나의 관점에서는 이 이야기가 공정성을 다루기에 시청자에게 쾌감이라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연/지연으로 인해 누군가는 기회를 너무 쉽게 얻고, 박사학위의 리포트도 대리인이 작성한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성별에 따른 임금 불평등도 존재한다. 이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는 마주한 불평등에 곧장 분노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불공정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다.
흑백요리사는 이 불평등의 구조/체계를 프로그램 안에서 파괴한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통쾌하고 쾌감이 발생하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언더독의 반란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기도 하고, 오래된 장인의 칼질에 역시 짬밥은 무시 못한다며 그들의 존재를 수긍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공정성을 중시하는 대결로 시청자에게 희망을 전해준다. 사회 저 편, 혹은 시청자가 위치한 구석에서도 사회는 공정할 수 있겠다는 희망 말이다. 흑수저인 우리는 언젠가 펼쳐질 백수저와의 정면승부를 떠올려본다. 우리가 가진 무기를 갈고닦으며, 백수저를 실력으로 앞서는 행복한 상상은 도파민 회로를 충만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