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타 기계장치 무대, 예산대(曳山臺)
산대놀이는 광대(廣大) 집단이 연희(演戲)하는 우리나라 전통 민속극 가운데 하나이다. 이때 산대(山臺)는 야외 공연을 위해 설치되었던 산 모양의 무대 구조물을 말하며, 산대 앞에서 연행된 연희들을 산대희(山臺戱)라고 부른다.
산대는 고대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 때 팔관회(八關會)에서부터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 연등회(燃燈會)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팔관회와 연등회는 국가적 규모로 치러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 행사이다.
우리나라 산대에 대한 기록은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조선 성종 때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 동월(董越)의〈조선부(朝鮮賦)>, 그리고 <중종실록>, <문헌비고(文獻備考)>, <나례청등록(儺禮廳謄錄)>, <기완별록(奇玩別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 무대인 채붕(綵棚)은 누각의 형태로 나무 단을 만들고 오색 비단 장막을 늘어뜨린 가설무대이다. 채붕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재물보(才物譜)>, <세종실록>, <세조실록>, <광해군 일기>, <문종실록>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1796년 조선 정조 때 수원화성 성역 완공 축하 기념식 ‘낙성연’을 묘사한 한글 필사 채색본 <정리의궤(整理儀軌)> 속의 <낙성연도(落成宴圖)> 그림 하단에는 취발이, 노승, 여인들이 타고 있는 두 개의 채붕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채붕 위쪽에는 사자 탈춤과 호랑이 탈춤이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전통 무대 장치인 산대(山臺) 중에는 오토마타 기술이 접목된 주목할 만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 영조 1년(1725)에 중국 사신 아극돈(阿克敦, 1685-1756)이 조선에 다녀가면서 각종 행사 및 풍속, 풍경을 담아 그린 20장짜리 화첩 <봉사도(奉使圖)>이다.
<봉사도> 제7폭에는 주로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기관인 모화관(慕華館)에서 행해진 연희 공연 장면 그림이 있는데, 그림 오른쪽 하단에 바퀴가 달린 거대한 산대 무대장치, 즉 ‘예산대(曳山臺)’가 그려져 있다.
<봉사도>의 ‘예산대’는 사람이 직접 끌고 다니는 이동식 산대로서 자격루(自擊漏), 옥루기륜(玉漏機輪), 혼천의(渾天儀), 만석중 놀이 등과 함께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이 들어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오토마타 장치로서, 높이 8~9미터에 달하는 기암괴석(奇巖怪石) 모양의 거대한 무대 구조물이자, 기관인형(機關人形) 공연을 위한 기계장치 산대이다.
전통 민속극 연구자이자, <동아시아 기관인형 연구>(민속원, 2015)의 저자 박세연의 논문 <조선시대 산대 기관인형 연구>(2014)에서는 ‘예산대’를 ‘기관인형 공연 장치’라고 파악하면서, ‘기관인형은 기계인형과 비슷하지만, 기계인형은 내부에 동력을 저장해 움직이는 방식인 반면, 기관인형은 동력장치를 인형 외부에 둔다는 차이가 있다’라고 분석하였다.
또한 이 논문에서는 “봉사도의 왼쪽 마당에서 연희되고 있는 줄타기, 가면극, 물구나무서기 등의 놀이가 백희(百戱)이고, 그림 오른쪽의 기암괴석 사이로 보이는 잡상(雜像)들이 괴뢰희(傀儡戱, 인형극)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예산대’는 단순한 무대 장식용 장치가 아니라, 이동할 수 있는 수레 위에 기계장치가 들어있는 가산(假山)이 올려져있는 구조로서, 신선이 사는 세계인 산대 속에서 무희, 선녀, 동자, 강태공, 원숭이 등의 인형 움직임을 연출하여 보여주는 종합적인 연희 공연을 위한 오토마타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봉사도>의 ‘예산대’는 2009년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공연예술 프로젝트 그룹 ‘홍두’에 의해 축소 복원 제작된 바 있으며, ‘예산대’가 이동할 때는 지남거(指南車)의 바퀴를 동력으로 인형이 움직이고, 멈췄을 때에는 동력과 분리되어 직접 인형 조종사가 인형을 움직이는 구조로 설계되어 제작되었다.
박세연의 위 논문에 따르면, ''예산대는 중국의 기관목인(機關木人), 그리고 일본의 가라쿠리(からくり)와 함께 동아시아 전통 기관인형의 역사라는 커다란 퍼즐 속에서 비어 있는 한국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퍼즐조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