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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Nov 01. 2023

결못남 일기(01) - 이상형

브론즈-솔로-인생



# 채팅방을 만들게 되었다. 제목은 결못남녀의 숲. 비슷한 사정의 결못동료이자 내 글을 애독하는 두 분이 들어왔다. 매일 결못남녀의 생존신고를 하기로 했다.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주기로 했다. 한 동료 회원님의 표현에 의하면 ‘내적친밀감’을 지닌 자들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제법 즐겁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것을 시작하면, 설렘보다는 이것의 파괴를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무엇이든 종료하는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나는 그런 자각이 있다.


  어떤 회원님이 다른 회원님에게 물으셨다, “이상형이 있으신가요?” 

  나에게는 분명히 이상형이 존재했다. 누르면 바로 대답할 정도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조건과 조건과 조건의 조합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에게 물은 것은 아니지만, 대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잠들기 전에 한참을 고민했다. 아마 이상형이란 것을 외우고 다니며 제시하던 그간의 방법이 잘못된 것 아니었을까?




# 얼마 전 나는 가위에 눌려서 깬 일이 있었다. 수면 장애를 많이 겪고 있지만, 가위에 눌린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몸은 꼼짝하지 못 했지만 목소리는 낼 수 있었다.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에서 나를 흔들어 깨워준 사람이 있었다. 가위에 눌려서 무엇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그것을 회상했다. 시간이 다소 지나서야 몸부림치며 깼다. 나란 놈은 혼자서 살 수 있는 속성의 인간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런 기분으로 출근해서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아무 일 없는 척, 결핍되지 않은 척 연기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우주 아래 혼자 누워서 자야 한다. 이것의 반복.




# 나는 ‘티키타카’라는 단어가 싫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혹은 자신에게 상대가 알아서 맞춰주길 원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이상형의 조건을 “티키타카 되는 사람을 찾아요”라며 둘러대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자란 생물은 알기 어렵다고 치부하는 근거로 차용하던 단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이상형을 티키타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그것을 이해할 것 같다. 모든 것이 녹아 있는 그 단어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티키타카에는, 나의 수면장애를 해소해 줄 그런 사람, 혹은 가위에 눌린 나를 옆에서 깨워줄 수 있는 사람, 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기회가 된다면 나는, 나의 이상형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싶다. 

  나를 구조해 줄 수 있는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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