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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Dec 31. 2023

결못남 일기(06) - 연말

브론즈-솔로-인생



  보통의 연말에는 한 해 고생했다는 종류의 안부 메시지가 몇 개씩은 오곤 했었다.

  그러나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도 남자는 아무것도 받지 못 했다. 애초에 그런 것을 보내거나 기대하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성의 없이 다수에게 보내는 안부 메시지라도 받으면 불완전-불필요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에도 부속되어 있지 않았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연애도 소개팅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 주고받을 급박하거나 혹은 애틋한 메시지가 올해의 마지막 날에는 전혀 없었다. 새로 바꾼 휴대폰은 남자에게 텅빈 차가운 금속 덩어리일 뿐이었다. 호신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무엇. 모임 약속도 없었다. 남자는 결혼한 친구들과는 시간이 흘러 너무나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어울릴 건덕지가 없었다. 주고받을 안부나 호기심이 없었다.

  외롭다는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최근 공기가 나빴다. 마지막 날의 대기질은 최고로 좋았다. 남자는 기쁜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땀에 흠뻑 젖을 만큼 걸었다. 걷고 뛰는 중에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휴대폰을 보는 사람, 휴대폰을 보느라 바뀐 신호에 재빠르게 출발하지 못 해서 뒤차로부터 경적을 유발하는 사람, 이런 모습을 관찰하며 남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인류는 끝장났어.'


  산책을 마치자 쏟아지는 1년 치 기억의 무게에 비로소 약간의 우울감을 느낀 남자는 초콜릿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 늘 먹는 초콜릿을 파는 곳은 근처에 한 군데인데 다행히 열려 있었다. 마지막 날에 근무하는 사람은 울상이었다. 직원은 툴툴거리며 약간의 반말조로 바코드를 찍었다.

  "포인트 카드 있어요?"

  "아뇨."

  남자는 적립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아베 히로시의 루틴을 떠올렸다. 평소라면, '안녕히 계세요'(당연히) 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좋은 인사를 받았다면) 정도의 인사를 하고 나왔을 텐데, 남자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고 초콜릿을 들고나왔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걸음 수가 9,800보였다. 10,000보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남자는 다시 나가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한 바퀴 돌았다. 어떤 중년의 남자가 놀이기구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정말로 인류가 끝났다는 생각을 하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들었는데, 인구 절벽으로 희망이 없어진 사회에 대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말에 접한 즐거운 소식은 기안84의 연예 대상 수상 소식밖에는 없었다.


  남자는 글을 쓰고 초콜릿을 먹었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딱히 슬프지는 않은 밤이었다. 그런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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