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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Apr 28. 2024

결못남 일기(07) - 최선

브론즈-솔로-인생



# 새해가 되며 커피를 끊었다.

  앞으로는 그 어느 것에도 의존적으로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무엇과도 이별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였다. 반드시 커피가 있어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내 일상이, 많은 것을 떨쳐내지 못 하는 자신이, 여러모로 병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커피를 서서히 줄이면서 끊으라고 했는데, 나는 칼같이 끊었다. 과거에 담배를 끊어본 경험에서 깨달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별에는 중간이 없어야 한다. 한 번에 단절해야지, 의존 대상을 서서히 줄여가는 것은 극복을 지연할 뿐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카페인 금단 증상에 한동안 시달리다 해방될 수 있었다. 커피를 끊는 것은 내 인생에서 '늘 필요로 했던 무엇'을 끊는 행위 중에 가장 쉬운 편에 속했다.


아끼던 회사 동료가 퇴사했다. 지쳤다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었고, 작은 선물을 사줬다.


어떤 모임을 새롭게 가졌다. 이성적인 만남을 기대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특정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모임이었다. 매주 정기적으로 만났는데, 상당히 즐거웠다. 나는 어느새 그들에게 의존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횟수를 정하고 시작한 모임에도 끝이 다가왔고, 나는 또다시 의존할 대상이 없어졌다.


나는 여전히 혼자서는 충족되기 어려운 사람이고, 아직도 수면제가 있어야 잠에 들 수 있다.




# 이까짓 최선

  분명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엉망이다. 요즘 "죽고 싶다"는 말을 한 번씩 중얼거리는 거로 봐서는 매우 좋지 않은 상태다. 그럴 만도 한 게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노후자금을 사기당해서 날려 먹었다. 분명히 우리 집안은 평균 이상의 경제적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이제 평균 이하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희미했던 결혼이라는 목표에서 갑자기 1천 킬로미터는 더 멀어진 기분이다. 게다가 얻은 지 2년 넘은 질병이 낫지를 않는다. 삼십 대가 꺾이면서부터는 신체의 자기회복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병원을 얼마나 다녀야 하는지, 노인이 된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자주 잔병치레하고 더욱 아프며 살아갈 텐데 벌써부터 끔찍하다. 몸과 마음, 앞으로는 약해질 일만 남았다니, 하핫.


니체를 종종 생각한다. 욕하기 위해서다. 니체라는 작자가 아마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살아도 좋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고 인생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 따위의 말을 했을 건데, "지랄하고 있네"라는 생각만 드는 거다. 나는 이까짓 최선의 인생 두 번 다시는 싫다고. 나는 요즘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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